한국일보

■정지현의 와인 이야기

2006-08-23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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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가 중요한가
아버지가 중요한가

훌륭한 와인을 만들기 위해서는 훌륭한 포도를 재배하는 것이 무엇보다 우선입니다. 된장국을 만들 때 된장이 우선 맛있어야 하는 것과 똑같은 얘기입니다. 그리고 한 송이 우수한 포도를 만들기 위해서는 햇빛과 흙과 물과 그에 맞는 기후가 필요합니다. 모두가 절대적으로 중요하기 때문에 어느 것이 제일 중요하느냐는 질문은 사실 있을 수 없습니다.
그래도 굳이 무엇이 가장 중요하냐고 또 묻는다면 필자는 할 수 없이 ‘흙’이라고 대답하고 싶습니다. 흙은 마치 어머니의 자궁과 같아서 모든 성질을 결정 짓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기후가 아버지 같은 역할을 한다면 흙은 어머니 같은 존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기후가 더 중요하다고 하는 전문가들도 많습니다. 좋은 흙은 어디에서나 만날 수 있지만 좋은 기후는 쉽게 만날 수 없다는 것이지요. 전통적으로 훌륭한 와인을 만들어 내는 곳은 특별한 기후의 조건을 모두 갖추고 있습니다. 지리적으로 얘기하자면 대체로 북반구의 북위 30~50도 사이와 남반구의 남위 20~40도 사이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곳의 온도는 대체로 섭씨 10~20도 정도입니다.
예를 들면 프랑스의 샴페인과 버건디, 독일의 화이트 와인은 다른 것들보다도 산도와 향이 강하고 섬세한 맛을 지니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서유럽에서도 가장 서늘한 지역인 북쪽 끝에 위치해있기 때문입니다. 이 지역은 매우 서늘하기 때문에 주요 품종인 샤도네나 피노 느와 그리고 리슬링 같은 포도가 완전히 익지 않을 때도 자주 있습니다(그럴 땐 약간의 설탕을 첨가하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주품종인 세미용과 소비뇽 블랑, 리슬링 포도로부터 늦게 피는 곰팡이 덕분입니다. 이 지역은 해가 잘 들면서도 습도가 많은 독특한 기후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처럼 계속해서 전통적으로 우수한 와인을 만들어내는 곳은 오랫동안 없었습니다.
캘리포니아 기후는 이들과 다르게 훌륭합니다. 해안을 따라 펼쳐져 있는 포도밭은 뜨거운 낮과 서늘한 아침과 저녁 그리고 건조한 여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가장 유명한 프랑스나 독일의 지역보다도 더 많은 일조량을 가지고 있으며 아침저녁 태평양으로부터 불어오는 차가운 안개는 캐버네 소비뇽이나 샤도네 그리고 그 밖의 많은 다른 품종의 포도를 완벽하게 조화시킵니다. 그래서 캘리포니아에서는 발효시킬 때 설탕을 첨가하는 법도 없고 그것은 주법에 어긋나는 일이기도 합니다.
기후가 더 중요한지 흙이 더 중요한지를 묻는 질문은 우리가 이분법적 사고방식에 길들여져 있기 때문에 나오는 질문입니다. 우리의 오감과 의식은 자신의 생각으로 세상을 구분하게 되어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아버지와 어머니 모두가 필요합니다. 기후가 중요한 것은 말할 필요도 없지만 흙도 그와 똑같이 중요합니다. 흙은 대지를 뜻합니다. 대지는 포도나무뿐만 아니라 모든 살아있는 것들의 어머니이자 생명의 근원이기도 합니다.
북미대륙 인디언의 말이 생각납니다. “보라, 하늘을 나는 새들도 밤이 되면 날개를 접고 땅 위에서 쉬지 않더냐?”

gentlewind4@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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