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정지현의 와인 이야기

2006-07-12 (수)
크게 작게
와인 고르기

“어떤 와인을 사야 되나요?”
이러한 질문 뒤에는 급한 마음이 숨어 있음을 압니다. “골치 아프게 긴 설명은 필요 없어요. 무슨 와인을 어디서 사야 되는지 알려주시기만 하면 되요.”
그러한 질문에 간단히 대답할 수 있지만 정확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와인은 잠시도 쉬지 않고 변하는 음료이기 때문입니다. 같은 종류의 포도를 같은 밭에서 수확하여 같은 방법으로 만들었다 해도, 매달 숙성되는 상황도 틀리고 진열되어 있는 장소에 따라서 틀릴 수도 있습니다. 선반에 올라앉아 있는 병 속의 와인도 끊임없이 변화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순간에 추천한 와인이 언제 이 글을 읽느냐에 따라서 혹은 어느 지역에서 원하느냐에 따라서 전혀 맞지 않는 정보가 되어버릴 수 있습니다.
좋은 와인을 고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오직 ‘시음’뿐입니다. 맛있는 된장을 구분할 수 있는 방법은 손가락으로 찍어먹어 보는 수밖에 없듯이 말이죠. 물론 그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러나 관심을 가지고 살펴보면 시음을 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음을 알게 됩니다. 와이너리를 방문해서 시음해 본다든지, 와인바나 가게에서 주최하는 공짜 시음회에 참석해 본다든지 혹은 와인동호회에 가입한다든지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도 쉬운 방법은 아닙니다. 대부분의 우리는 넉살이 그렇게 좋지도 않고 시간도 만만치 않기 때문입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와인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가까운 사람들과 모이는 겁니다. 모두는 각각 마음에 드는 와인을 한 병씩 가지고 옵니다. 처음에는 한 가지 품종으로 통일하는 방법을 택합니다. 그리고는 블라인드 테이스팅(blind tasting)을 하는 겁니다. 와인을 종이백에 넣어서 병을 가리고 번호를 적습니다. 각각의 맛을 본 후 통일된 방식으로 점수를 줍니다. 제일 많은 점수를 받았거나 특별히 당신의 관심을 끈 와인을 찾았다면 그것을 가져온 사람으로부터 정보를 얻고 ‘즉시’ 그 와인을 구입하는 겁니다. ‘즉시’라는 말은 중요합니다. 당신께서 좋아하신 그 와인은 두 번 다시 이 세상에 나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비싼 와인이 확실히 좋을까요? 이러한 질문은 ‘비싼 음식은 다 맛있느냐?’라는 질문과도 비슷합니다. 세계적으로 명성을 가지고 있는 비싼 와인을 마셔보면은 과연 감탄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그 향과 맛의 기억은 참으로 오랫동안 잊혀지질 않습니다. 그렇다면 비싼 와인이 좋다는 말은 맞습니다. 하지만 전문가들로 이루어진 각종 와인대회에서 블라인드 테이스팅의 결과를 보면은 놀랍게도 값이 저렴한 와인들이나 유명하지 않은 와이너리들의 와인이 일등, 이등을 차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다면 비싼 와인이 다 좋다는 말은 맞지 않습니다.
와인은 대단히 주관적인 음식입니다. 사람들의 입맛은 보편적인 감각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저에게 맛있는 된장찌개가 당신에게도 꼭 맛이 있으리라는 법은 없습니다.
대부분의 우리는 경제적으로 완전히 편안하지 않으며 한 병의 와인에 ‘정당한 가격’을 지출하고 싶어합니다. 값이 싼 와인을 구입하는데 전혀 망설일 이유가 없습니다. 우리가 가진 것에 따라서 사람을 평가하지 않듯이, 와인도 값으로만 고르지 않습니다. 진정으로 와인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값이나 라벨만 보지 않고, 와인의 진면목을 보려고 애씁니다.
gentlewind4@hotmail.com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