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피터스버그는 러시아의 살아 있는 역사박물관
러시아가 개방되고 나서부터 세인트 피터스버그(일명 상페테르부르그)를 관광하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 이 도시를 보고 나면 세 번 놀란다. 첫째 피터스버그가 40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도시라는 점, 둘째 도시가 고색 찬란하여 너무 아름다운 점, 셋째 공산 정권 하에서도 러시아 제정시대의 유적이 잘 보관된 점이다.
피터스버그는 러시아의 베니스다. 시내 가운데를 흐르는 네바 강을 중심으로 사방에 운하가 뚫려있어 보트를 타고 한바퀴 돌아야 시 윤곽이 머리에 잡힌다. 피터스버그는 피터 대제(1672~1725)가 직접 설계한 도시다. 피터대제(사진)가 러시아의 수도를 모스크바에서 피터스버그로 옮긴 이유는 왕세자 시절 모스크바궁 내에서 일어난 음모로 어머니와 친척들이 무참히 살육되는 현장을 목격해 모스크바에 정이 떨어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피터스버그는 에스토니아와 핀란드 바로 옆에 있어 당시 핀란드를 다스리고 있던 스웨덴과의 충돌을 피할 수 없었다. 러시아는 폴타바 전쟁에서 스웨덴과에 대승하여 발틱해 진출에 성공했다. 이때 사로잡은 스웨덴 포로 4만명이 피터스버그 건설 현장에 투입되었다. 피터스버그는 스웨덴인의 피땀으로 세워진 셈이다.
피터 대제가 직접 세운 피터호프 궁전. 황금으로 입혀진 조각품들과 분수대는 현란할 정도로 화려하다. 네바 강이 한눈에 펼쳐지는 절경의 언덕 위에 세워진 이 궁전은 피터스버그 시내에서 1시간 거리에 떨어져 있다.
러시아의 역사는 피터스버그와 직결되어 있다. 이 도시를 이해하지 못하고는 러시아 역사의 진수를 파악할 수 없다. 짜아 시대의 개막과 유럽 군림, 볼셰비키 혁명과 로마노프 왕조의 비참한 최후, 200만명의 시민이 목숨을 바친 나치 독일과의 900일간의 혈투, 스탈린의 피터스버그 시민 150만명 시베리아 유배,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후 소브차크 시장이 이끈 민주혁명 등 이 도시의 역사는 피로 쓰여져 있다.
피터스버그는 레닌의 활동 중심지였다. 그래서 공산 정권 하에서는 레닌그라드로 불리다가 최근 다시 피터스버그로 옛 이름을 찾은 것이다. 현 푸틴 대통령도 피터스버그 출신이며 한때 부시장을 지낸 적이 있다. 이 도시는 전통적으로 반항아적인 체질이 있어 볼셰비키 혁명의 요람지이기도 하지만 반스탈린 운동과 옐친 지지에도 맨 앞장서 집권자들이 항상 골머리를 앓는 자유분방한 도시다.
거리의 선물가게. 손님이 왔는데도 주인이 담배만 피우고 있다.
아름다운 도시이기는 하나 공산주의 체질이 남아있어 관료주의가 여전하고 종업원들에게서 애교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러시아에 들어갈 때는 반드시 비자를 사전에 얻어야 하는데 비자료가 100달러나 되는 데다 한 달씩 걸리는 등 짜증이 난다. 세관도 까다로워 1956년 이전에 구소련에서 제조된 물건은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문화국의 사전승인을 얻어 반출해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출국할 때 모두 압류 당해 정떨어진다.
무대에서 공연한후 자신들의 CD를 팔고있는 러시아 여성.
샤핑할 때 물건을 사지 않으면서 이것저것 가격을 물어보면 점원이 싫어하는 기색이 역력해 “사지 않으려면 귀찮게 물어보지 마라”는 식이다. 손님이 가게에 들어왔는데도 여종업원이 담배를 피우며 이야기하는 데는 어이가 없다. 식당에서 밥 먹고 큰돈을 주면 잔돈은 은근 슬쩍 팁으로 챙기려해 잔돈 가져오라는 이야기를 꼭 해야 한다고 경험자가 귀띔한다. 밤에 혼자 거리에 나가는 것은 위험하다고 안내서에 써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터스버그는 너무나 아름다운 도시며 러시아 관광의 진주다.
이 철 <이사>
clee@korea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