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종교인칼럼/Co-Sign 에 얽힌 사연

2006-05-09 (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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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홍목사(시인)

내 아내에게 두 가지 금기 사항이 있다. 하나는 수영장이 있는 집을 사지 말 것, 다음은 보증을 서지 말 것. 이유는 이렇다. 어릴 때 수영장에서 물에 빠져 죽을 번 한 일과 그녀의 아버지가 오래 전 한국인으로는 최초로 U.N.에서 연설을 하고 U.N.의 보조로 세계 여행을 하다가 독일에
서 돈도 없는 목사 처지에 남의 보증을 서 주고 1년간 고국에 돌아오지 못한 충격들이 응어리 진 것이다.

같이 살면서 다행히 첫 번째는 나에게 큰 어려움이 없다. 수영장이 딸린 집을 사지 않으면 될 일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두 번째다. 뉴욕 롱아일랜드에서 목회 할 때다. 지금은 크레딧도 좀 생기고 내 집이라고 작은 집 하나를 장만하고 살지만 그 때는 너무 형편이 어려워 은행에서 몇 번이나 거래 중단을 당하고 어느 장로님 집에서 교회에서 내주는 월세를 내고 살 때다. 교인이나 친척이 두 주일 사이에 5명이 코-사인 해 달라고 손을 내밀었다. 그 중에는 동역하는 장로님도 두 분이나 있고 아내의 언니 네도 들어 있다. 가족처럼 아끼는 그중 한 장로님은 사업을 크게 벌였다가 알거지가 되었던 처지에 거절을 하면 상처가 이만 저만이 아님을 잘 안다.


난 사면초가(四面楚歌)다. 성경에 보증을 서지 말라는 구절도 있지만 여기에 적용키는 궁색하다. 그리고 5명을 한꺼번에 서 주는 일은 나로서는 힘든 일이다. 또한 성별하는 것은 양심 상 더 어렵다. 사람의 특성엔 두 가지가 있다. 의지적인 사람, 감성적인 사람이다. 어떤 특성이 특별히 나은 것은 아니지만 후자에 속한 나는 거절을 잘 못하는 편이다. 며칠을 고민하다가 아내의 아킬레스건을 끊기가 어려워 다 거절하기로 마음먹고 그 일을 실행했다. 그 후에 일어난 일들은 독자들의 상상에 맡긴다. 한 가지는 이 서면을 통해 그들에게 그 때 당시 상황을 피력하며 미안한 마음을 전하고 싶다. 책임지지 못할 Co-Sign 은 가급적 피하는 것이 좋다는 생각은 유한적이고 제한적인 인간의 존재성 때문이다. 그리고 수시로 변하는 상황
이다.

성경엔 인류를 위해 하나님 앞에 Co-Sign 해주신 분을 우리에게 소개하고 있다. 인간의 수치 두려움 질병 죄 죽음을 위해 사인을 하시고 대신 죽으셨다. 그가 예수시다. 그는 하나님과 같은 절대적 능력을 가지신 분일 뿐 아니라 헤아릴 수 없는 사랑을 가지신 분이시어 몇 사람도 감당 못할 아니 한 사람 자기도 해결 할 수 없는 우리의 존재에 보증을 서신 것이다. 그 보증에 감사하여 사도 바울을 말한다. “내가 확신 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필자가 예수님께 졸시 하나를 드리고 싶다. “에덴의 동녘” “에덴의 서녘/ 골고다 위/ 마른 나무에 달려/ 고개를 떨구었던/ 팔레스틴의 한 청년/ 님이 여/ 무지몽매한 군상들의 아우성/ 차디찬 돌무덤에 누워 있던 한 청년/ 님이 여/ 수치와 두려움 죽음의 옷 걸치고/ 떨고 서 있는 인간들에게 다가와/ 신혼의 꿈 안기고/ 팔 베게 내 밀던 한 청년/ 님이 여/ 풀벌레도 울지 않던/ 칠흙 같이 어둡던 밤 지새우고/ 새벽바람 안고 일어나/ 가르킨 곳/ 새 하늘과 새 땅 그리고 새 날/ 에덴의 동녘.

결론적으로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것을 책임지실 수 있으나 인간은 할 수 없다. 우리 사회에서 비일 비재하는 Co-Sign 문제로 깊은 상처들이 일어나는 것을 본다. 가급적 상대방이 책임질 수 없는 것 또는 무리한 일은 서로 요구하지 말거나 요구를 받아도 지혜롭게 대처해서 삶의 리듬을 잃지 않았으면 한다. 비사무적이고 감성적인 특성을 가진 우리 한국인에게 더욱 절실하게 필요한지도 모른다. Co-Sign 에 얽힌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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