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나 들어왔어요.”
난 언제나 그렇게 집을 들어섰다.
50이 훌쩍 넘어버린 이 나이에도 나에게 어머니는 엄마였다. 엄마와 안 살아본 세월은 불과 몇 년, 난 언제나 엄마와 함께였다.
그날은 집에 딸 친구들이 베이비 샤워를 해주러 온다고 하기에 “엄마 기분 어때요?” 하니 “좋아,” 하신다.
“그럼 머리 자르고 목욕 하실래요? 아이들이 우리집에서 베이비 샤워 한다고 하니 엄마 예쁘게 하고 예쁜 옷 입고 구경하세요.”
“좋지, 근데 너 팔 아픈데 괜찮겠니?” 하신다.
“오늘은 별로 안 아파요.”
엄마랑 마지막 수다를 떨고있는지도 모르고 오빠네 이야기, 딸아이 이야기를 하면서 웃고 머리도 자르고 감겨드리고 몸을 씻겨드리는데 갑자기 자꾸 내게로 기대신다. 평소 너무도 깔끔하신 엄마가 걷지 못 하시는 거 빼놓고는 누구를 의지하는 분이 아닌데 자꾸 기대신다. 혼자서 엄마를 들 수 없어 놀라 사위를 부르니 당신이 벗었으니 옷을 입히고 부르라 신다. 그 말이 엄마의 마지막 말씀이었다.
곧 앰뷸런스가 오고 엄마는 그날 하나님 품으로 가셨다. 너무도 곱게, 너무도 아름답게...
엄마는 가시면서 내가 외로울까 봐 친구를 찾아주셨다. 40여년 전 헤어진 소꿉친구가 나를 찾고싶어 신문에 부탁을 했는데 며칠 지난 후 나왔고 공교롭게도 부고가 나간 후라 손님이 그걸 보고 나를 찾는 것 같다며 연락을 주었다. 급히 오빠한테 연락하고 오빠의 기억을 살려 반갑게 전화했다.
정말 반가웠다. 그 어린 날 소꿉장난 친구가 날 찾다니. 요즈음 많이들 TV에서 친구 찾는 프로는 봤지만 그게 나라니.
믿기지 않았다. 엄마는 가시면서도 내 생각을 하신 거다. 내가 외로울까 봐.
평생을 가족을 섬기시고 헌신하셨던 엄마. 모르는 사람들은 나보고 효녀란다. 엄마는 가시면서도 나에게 선물을 주신 거다. 언제나 처럼.
친구를 찾으면서 가족들의 기억들이 되살아나 실로 오랜만에 형제들이 다 모였다. 우리 엄마가 그리 원하시던 형제간의 우애, 엄마는 가시면서도 우리를 섬기시고 우리를 하나되게 하셨다
엄마. 다시는 부르지 못할 이름이지만 엄마는 늘 내 가슴에 살아계신다.
써니 리 <훼어팩스, V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