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세상
2006-03-20 (월) 12:00:00
어려운 이민생활 속에 나이가 들어 힘이 없어지면 자신도 모르게 자식들에게 얹혀 살게 된다. 천생에 말이 많은 사람이라 오래간만에 옛 벗하고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누다 밤을 새고 깨어나 보니 눈알이 빨갛게 충혈됐다. 앞이 보이지 않는 안질에 걸린게 아닌가하고 걱정됐다.
한인록을 찾아보고 신문을 펼치면서 싼 병원을 찾았다. 병원비의 예상액은 너무나 커서 나는 차라리 눈을 감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러다 마지막 한곳으로 전화를 걸어보니 천사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이다. 그냥 편안한 마음으로 오세요. 아무런 마음에 부담 가지지 마시고. 태어나 이토록 고마운 말은 처음이다. 병상에 누워 눈을 진찰해보니 안구에는 이상이 없고 눈약을 잘못 써서 눈 안에서 약이 부작용을 일으킨 것이었다.
집사람 역시 병원비가 걱정이 되어 슬그머니 마켓에 가서 의사 처방없이 사온 눈약이 그만 사람을 잡은 것이었다. “그 동안 마음고생만 많이 하셨습니다. 이제는 마음 편히 하세요. 그냥 집에 가셔서 맑은 물로 며칠 잘 닦아내시면 완치되실 수 있으십니다.”
아! 봉사란 이렇게 하는 것이로구나. 그동안 살아오면서도 남들 앞에서 떳떳하게 내세울만한 것이 없이 허울 좋게 남을 위해 사회에 봉사를 한다고 몰려다니며 힘들게 사는 사람들의 주머니돈만을 걷어 봉사하려던 내 자신이 한없이 부끄러워지는 것이었다. 봉사란 신이 나에게 내려주신 탈렌트 안에서 소리 없이 불쌍한 이웃에게 내 것을 나누어주는 것이로구나. 치료가 끝나고 세월만큼 휘어진 나의 안경테를 바로 잡아주는 그녀의 손길은 어느새 비틀어진 나의 마음도 새롭게 바로 잡아 줬다.
구연진/ V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