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친 공장지대가 소호같은 대표적 화랑가로
붉은 벽돌 보도와 철제 창고가 늘어선 뉴욕의 소호(SoHo) 분위기를 남가주에서 만날 수 있다면 아무도 믿지 않을 것이다. 화려하고 늘 유행에 앞서는 베벌리힐스나 할리웃이라면 몰라도, 지극히 무료하고 거친 느낌의 산업지역에서 다른 무엇도 아닌 아트 갤러리를 떠올리기란 더욱 어려운 일. 그러나 버가못 스테이션(Bergamot Station)은 그런 통념을 깨고, 무미건조해 보이는 샌타모니카 공장가 한복판에서, 단점으로 보일 수 있는 조건을 오히려 멋으로 승화시켜 독특한 스타일을 갖춘 남가주 대표 화랑가로 자리 잡은 곳이다.
전통적인 현대미술에서부터 설치미술, 조각 등 다양한 장르를 한 곳에서 볼 수 있다.
12년전 트롤리 역 개조
철제 건물의 특징 살려
타지 갤러리 속속 입주
유명 작품등 단골 전시
갤러리 투어 필수 코스
과거LA 다운타운과 샌타모니카 피어를 오가던 트롤리 역을 개조하여 철제 건물의 특징을 살린 낡은 창고식 갤러리 커뮤니티가 처음 생긴 것은 12년 전인 1994년. 버가못이라는 이름은 정거장 주변에 많이 피던 베르가머트 꽃나무의 이름에서 붙여진 것.
처음 20개 갤러리가 모여 문을 열 때 관계자들이나 미술계 모두 현재와 같은 성공을 전혀 기대하거나 예상하지 못했다고 한다. 남가주를 중심으로 한 화랑가의 수명이 결코 길다고 할 수 없는 경향을 보이는 데다, 버가못의 위치나 특징이 일반적인 LA 갤러리들의 세련되고 정제된 분위기와 동떨어진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LA 인근뿐 아니라 타지역 주요 갤러리들의 분점이 문을 열기 시작했고 지명도 높은 작가들의 작품이 쇼케이스로 선보이면서 차츰 뉴욕과 유럽에서까지 다양한 아티스트와 갤러리 관계자들, 그리고 미술 애호가들이 몰려들었다.
초창기부터 이 곳을 지켜온 쇼쉐나 웨인 갤러리(Shoshana Wayne Gallery)에서 항상 충격과 논쟁을 불러일으키는 요코 오노(Yoko Ono), 한국에서도 전시한 경력이 있는 필립 아젠트(Philip Argent)를, 트랙 16(Track 16 Gallery & Mainspace)에서 음악과 미술을 넘나드는 퍼포머 데이빗 바이런(David Byrne)과 퍼포먼스 아티스트 캐런 핀리(Karen Finley)와 같은 유명인들을 소개하면서 버가못 스테이션에 대한 관심이 전국적으로 퍼져나갔다고 할 수 있다.
또한, 다분히 LA적인 요소에서 벗어난 버가못 만의 투박하다고 할 수 있는 모드와 풍이 오히려 포장된 분위기보다 더 현대적이고 세련된 스타일을 표출한다는 점이 일반인들에게 인식되면서 이제는 관광객들이 단순히 구경을 목적으로 모여드는 명소로까지 부각되었다.
뉴욕타임스를 비롯하여 타주 언론에 오르내리면서 갤러리 투어 그룹들에게는 반드시 들러야 하는 곳으로, 그리고 샌타모니카를 방문하는 일반 관광객들에게는 바닷가와 3가 프러머나드를 지나 쉬어 가는 곳으로 여겨지고 있다.
버가못의 가장 큰 매력이라면 무엇보다도 다양성을 꼽을 수 있다. 소형 현대미술관인 샌타모니카 뮤지엄 오브 아트(Santa Monica Museum of Art)를 비롯하여 30여개의 갤러리와 부틱, 카페 등이 모여 있는데, 각 유닛마다 자기만의 개성 있고 독특한 성격을 고수하고 있는 덕에 다른 어떤 화랑가 보다도 깊이 있고 다양한 예술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전통적인 현대 미술에서부터 설치미술, 조각, 주어리 아트 등 다양한 장르를 한 곳에서 볼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웨스트사이드의 각 중고등학교와 미술 대학에서 견학 장소로도 자주 이용하고 있다.
이외에도, 간단한 식사와 커피를 즐길 수 있는 카페, 유명 디자이너 의상을 중고 가격에 구입할 수 있는 비영리 부틱(The Colleagues Gallery), 인테리어 디자인 그룹, 액자 및 종이 전문 갤러리 등이 자리하고 있어서 컴플렉스 안에서 한나절을 보내도 충분히 여유롭게 즐기면서 구경할 수 있다.
또한, 다수의 소규모 갤러리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이 어린 자녀를 둔 가정에 어필하고 있어, 최근에는 주말마다 꼬마들의 손을 잡거나 스트롤러를 끌고 나들이 나온 가족을 흔히 볼 수 있다. 지나치게 큰 미술관 관람 시에는 아이들이 지치거나 실증을 낼 수 있지만, 버가못에서는 매 갤러리마다 관람 시간이 짧고, 마치 야외 전시장에 설치된 부스를 돌아다니는 것처럼 자유롭게 갤러리를 옮겨다닐 수 있어서 아이들의 지루함을 줄일 수 있다는 것.
버가못 스테이션 아츠 센터는 2525 Michigan Ave., Santa Monica, CA 90404에 위치해 있으며, 자세한 문의는 bergamotstation.com이나 각 갤러리별로 전화나 웹사이트를 찾으면 된다. 갤러리마다 개장시간이 다르기 때문에 미리 확인하는 것이 좋다. 컴플렉스 중앙에 무료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다.
주요 갤러리 프로그램
괄호안 번호는 각 갤러리 유닛 주소
새라 리 아트웍스
(Sarah Lee Artworks & Projects, T1)
한인 소유의 갤러리지만 한인이나 동양인에 국한되지 않은 다양한 사진과 페인팅을 전시해 온 곳. 현재 진행 중인 LA의 한인 중견작가 그룹전 ‘Process’를 통해 버가못 커뮤니티에 다수의 한인 화가들을 소개했다. 문의는 (310)829-4938
‘새라 리 아트웍스’의 새라 리 관장(오른쪽)이 ‘버가못 스테이션’을 방문한 기자(왼쪽에서 2번째)에게 아츠센터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마크 무어 갤러리
(Mark Moore Gallery, #A1)
3월 25일까지 영국 출신 사이먼 윌렘스(Simon Willems)의 황폐하게 버려진 놀이터를 주제로 한 ‘Don’t Go Weird on Me’와 벨지엄 화가 신디 라이트(Cindy Wright)의 초상 및 정물 유화를 전시 중이다.
문의는 (310)453-3031 markmooregallery.com
피터 페터맨 갤러리
(Peter Fetterman Photographic Works of Art, #A7)
지난해 ‘밥 딜런과 60년대’ 사진전으로 큰 관심을 모은데 이어, 여러 동물을 통해 자연의 이미지를 담은 래즈로 래이튼(Laszlo Layton)과 현대 여성들의 심리를 다양한 포즈와 소품으로 표현한 릴리언 배스맨(Lillian Bassman)의 작품을 3월 중순까지 전시한다.
문의는 (310)453-6463 peterfetterman.com
쇼쉐나 웨인 갤러리
(Shoshana Wayne, #B1)
이번 주말에 끝나는 아이릿 뱃스리(Irit Batsry)의 ‘Through the Looking’은 현실이 인간의 지각과 테크놀러지, 그리고 상상력을 통해 변형 및 표출되는 과정을 사진, 조각, 시네마, 페인팅을 종합한 크로스오버 형태로 설치한 개인전. 18일부터는 캘리포니아 작가 애이미 윌러(Amy Wheeler)의 추상화전을 준비하고 있다.
문의는 (310)453-7535 shoshanawayne.com
패트리샤 포르 갤러리
(Patricia Faure Gallery, B7)
LA에서 가장 오래된 갤러리 중 하나인 만큼 역사와 명성에 어울리게 중견작가 로버트 라웨이 재커니치(Robert Rahway Zakanitch)의 레이스 페인팅전이 진행 중이다. 문의는 (310)449-1479 patriciafauregallery.com
LA에서 가장 오래된 갤러리 중 하나인 패트리샤 포르 갤러리.
트랙 16
(Track 16 Gallery & Mainspace, #C1)
완전히 다른 배경과 작품 세계를 가진 다섯 작가의 그룹전 ‘Five Stories High’를 통해 MIT 엔지니어 출신 작가 앨런 라스(Alan Rath), 필리핀 이민자로서 정식 교육을 받은 경험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21세 나이로 MOCA 그룹전에 발탁되어 화제를 낳았던 매뉴엘 오캠포(Manuel Ocampo), 환경문제와 대기업에 대한 불신을 작품에 담는 린 포크스(Llyn Foulkes), 화가 겸 조각가인 조지앤 딘(Georganne Deen)의 최신작을 선보이고 있다.
문의는 (310)264-4678, track16.com
버먼 터너 프로젝츠
(Berman/Turner Projects, #C2, D5, E1)
3월11일부터 4월 중순까지 커티스 리플리(Curtis Ripley)와 엘리자베스 팅글로프(Elizabeth Tinglof)의 추상화 개인전을 두개 갤러리에서 전시한다.
문의는 (310)315-9506, (310)453-0909, bermanturnerprojects.com
JKD 갤러리(G8)
중국, 한국, 일본 등 아시아 작가들의 작품을 주로 소개하는 곳으로, 최근에도 두 명의 중국인 작가들의 개인전을 마쳤다. 다음 프로그램은 3월 중순께 시작될 예정.
문의는 (310)998-5888, jkdgallery.com
코프로 내이슨 갤러리
(Copro/Nason Gallery)
대체예술이라고 표현할 수 있는 얼터너티브 아트(Alternative Art) 전문 출판 및 전시 갤러리.
문의는 (310)829-2156 copronason.com
컬리그스 갤러리
(The Colleagues Gallery)
디자이너와 빈티지 의상을 판매하는 비영리 단체. 월요일과 목요일, 매달 첫째 토요일에만 문을 열며 시간도 오전 10시부터 오후 2시로 제한되어 있어서 그 시간에는 주차장이 붐빌 정도로 사람들이 모여든다. 자세한 문의는 (310)828-1619
샌타모니카 미술관
(Santa Monica Museum of Art)
프로젝트룸 전시관에서는 4월 중순까지 엘 패소 화가 애너밸 리버모어(Annabel Livermore)의 개인전이 열리며, 메인 갤러리에서는 70여명의 작가 및 단체에서 공동 설치한 건축 예술 그룹전 ‘다크 플래이시스’(Dark Places)를 통해 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도시와 주택가의 물리적, 또는 심리적 환경 속에서 인간의 기억과 사회공간 사이의 관계를 묻고 있다.
문의는 (310)586-6488, smmoa.org
글 고은주 객원기자
사진 진천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