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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향곡 ‘핀란디아’ 통해 독립운동

2006-02-14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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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향곡 ‘핀란디아’ 통해 독립운동

핀란드는 음악의 나라다. 공원에 있는 파이프 올간 조각품.

교향곡 ‘핀란디아’ 통해 독립운동

시벨리우스

한번도 전쟁에서 이겨본 적이 없는 나라, 스웨덴과 러시아가 700년 통치

음악은 나라의 힘이다

올챙이 기자시절 내가 가장 이해할 수 없는 나라 중의 하나가 핀란드였다. 스칸디나비아에서 그런 대로 부유하고 민주주의를 하는 나라인데도 이상하게 중요한 이슈가 동서 진영 사이에 불거지면 소련편을 들거나 중립을 지켰다. 같은 스칸디나비아 국가인데도 노르웨이나 스웨덴은 친미적이고 핀란드는 친소적인 것이 이해가 안되었다. 핀란드가 왜 그럴 수밖에 없었는가를 알게 된 것은 핀란드 여행을 하고 난 후부터다. 핀란드를 이해하려면 우선 핀란드가 걸어온 기구한 운명을 이해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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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아 알렉산더 2세의 동상. 러시아의 통치시절을 엿볼수 있는 조각들이 남아있다.


핀란드 국민들이 속으로 싫어하는 나라는 사실 러시아와 스웨덴이다. 핀란드가 이 두 나라와 아이스하키 경기를 벌일 때는 한일 축구전 비슷한 열기를 띠는 모양이다. 죽어도 러시아와 스웨덴에게는 질 수 없다는 국민적인 감정이 앞선다. 핀란드는 1155년부터 600년 동안 스웨덴의 통치를 받았고(스웨덴어는 지금도 핀란드 공용어로 되어 있다) 1807년부터 1917년까지는 제정 러시아의 식민지였다. 그러니까 독립이라고는 해본 적이 없는 나라였다. 파란만장 끝에 겨우 독립국가를 건설했을 때는 2차 세계대전에 말려들게 되었다. 소련에 적대감을 갖고 있는 핀란드는 독일편을 들었다. 연합군이 승리하자 핀란드의 불운은 또 계속되어 소련에 일부 영토를 빼앗기는 수모를 당했다. 이 영토를 다시 돌려주는 조건으로 소련과 우호조약을 맺은 것이 그 후 내내 핀란드를 국제무대에서 친소적인 것처럼 보이게 했다. 헬싱키 등 핀란드의 주요 도시는 스웨덴과 러시아에 의해 네번이나 초토화되어 핀란드에는 역사적인 유물이 별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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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싱키 시내 시벨리우스 공원에 있는 시벨리우스 동상. 핀란드 최고의 조각가로 불리우는 엘리아 훌티넨이 1967년 제작했다.


핀란드의 음악이나 건축물 등 모든 것은 애국과 연결되어 있다. 시벨리우스(1865~1957)의 작품도 민족 서사시 칼라발라의 영향을 받아 작곡된 것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민족적’이라는 단어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다. 시벨리우스가 교향곡 ‘핀란디아’를 작곡하게 된 동기도 음악을 통해 국민들의 민족정신을 고취시키기 위한 것이었고 러시아는 이 교향곡 연주를 금지 시켰다. 이후 핀란드는 ‘유벤스쿨레’라는 합창운동을 통해 애국 캠페인을 폈다. 시벨리우스(사진)가 교향곡 분야에서 ‘제2의 베토벤’이라고 불리기 시작한 것은 2차대전 후 영국에서 지휘자 비첨 등을 중심으로 시벨리우스 음악제가 열리면서부터다.
핀란드는 음악이 만들어낸 나라다. 이 전통으로 오늘날 오스트리아와 맞먹는 음악국가로 발전했으며 시벨리우스 음악학원은 빈의 국립음대, 독일 켈른음대 다음가는 유럽 3대 음악학원으로 꼽힌다. 핀란드에는 교향악단이 30여개나 되고 음악학원이 150여개며 연간 300여개의 음악축제가 열린다. 또한 오케스트라법이 있어 국가에서 85% 예산 지원하며 음악교사의 봉급이 일반 직장인보다 높아 음악인을 사회가 알아주는 특이한 나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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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 건국의 아버지며 명장으로 이름난 마나하임 원수. (자료)


핀란드는 이웃과의 전쟁에서 한번도 이겨 본 적이 없다. 그러나 소련에 혁명이 일어나 ‘붉은 군대’가 핀란드를 침공하자 ‘마나하임’이라는 명장이 나타나 신출귀몰한 작전으로 소련 붉은 군대의 핀란드 접수를 물리쳤다. 영웅으로 떠오른 마나하임은 이 공로로 원수로 임명되었으며 후일 건국 대통령이 되었다. 마나하임과 시벨리우스의 동상은 전국 방방곡곡에 세워져 있다.

이 철
<이사>
clee@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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