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년 전 ‘환자와의 대화’라는 책을 읽었다. 사람은 유기체 동물이다. 기계도 잘 돌아가다 간혹 고장이 나듯 인간도 때로는 고장, 즉 아플 때, 병원에 가야할 때가 있기 마련이다. 이 책 내용은 이렇다. 어느 미국 환자가 수술을 하고 중환자실을 거쳐 일반 병실에 있게 되었다. 이제 수술 때 마취 기운도 빠져가고, 식사와 잠도 정상으로 되어 가는 때였다. 수술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환자가 음식을 먹기 시작하면 그는 회생할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이 환자가 벽에 있는 ‘American’이라는 캘린더를 보게 되었다. 어느날 커튼에 ‘AMER’ 글자 부분을 가려버렸다. 그러니 환자의 눈에는 ‘ICAN’ 단어만 보인 것이다. 이때 그는 ‘I CAN’으로 해석하고, 나도 회복될 수 있다고 다짐했다. 결과는 보나마나, 다른 환자보다 빨리 회복, 퇴원하였다는 병상 경험을 글로 쓴 것이다.
최근 내가 아는 직장에서의 일이다. 매주 수요일이면 전 종업원이 등뒤에는 회사이름, 앞에는 CAN 과 DO 가 크게 인쇄된 유니폼을 나눠 입고 하루동안 일한다. CAN을 입은 종업원이 가끔 “CAN” 하면, DO를 입은 사원은 “DO”라고 복창한다.
나는 30년 전 미국 직장에서 무결점 운동, ZD(Zero Defect)에서 파생된 PRIDE(Personal Responsibility In Daily Efforts), 업무성과 운동을 벌였던 기억이 난다. 개인별, 부서별 성과목표치를 정하고, 한달 후 평가에 따라 개인과 부서에 상을 주었던 제도였다.
사고(思考), 즉 마음에 두고 생각하는 것, 또는 생각하며 느낀다는 말은 행동(행위)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헛것이다. 우리 속담에 ‘시작이 반이다’는 말이 있다. 시작해야지 하는 마음만 가지고는 아무 것도 진전된 것이 없다. 어떤 계획을 세운 후 작업복을 갈아입고, 작업화로 바꿔 신고, 현장에 나가 계획표에 따라 머리, 손과 발로 행동에 옮기는 것이 바로 시작인 것이다.
우리 한국사람은 부지런하다. 더구나 일본 식민지 때 적용했던 ‘돈네기’, 즉 성과급을 경험한 세대는 주어진 일에 죽기 살기로 몰두, 빨리 끝내려는 사고에 젖어있는 것 같다. 끝나면 하루라도 먼저 돈네기 삯을 받는 욕심이 보태지기 때문에 유혹된다.
미국인은 우리와 다르다. 스패니시도 마찬가지이다. 그들은 주어진 시간에 일을 하고, 못한 부분은 내일 하기로 미룬다. 자동차를 타고 가면 육교나 순환도로 공사현장을 자주 보게된다. 처음에는 참 오래도 한다, 언제 끝나나 느꼈다. 그러나 공사가 끝나고 보면 깨끗 무상함을 보고 감탄한다. 20년 이상 워싱턴에서 사는데 다리 공사, 순환도로 공사 끝난 후 작업이 잘못되어 고치거나 다시 짓는 것을 나는 보지 못했다. 무슨 일을 계획하면 설계도에 따라 제대로 하고, 튼튼하게 마치는 모습을 보며 저렇게 하는 것이 바른 방법, 정도(正道)구나 느껴본다.
CAN과 DO를 합친 ‘CAN-DO-Attitude’, 나도(우리도) 할 수 있다는 태도를 자주 읽게 된다. 자기의 현재 신체조건에 알맞게 작은 목표를 실행해 보다가 약간 높은 목표치를 한 단계씩 올려 가는 지혜가 좋은 방책이라 여겨본다. 이제 나도 무리하게 시작하는 것은 안 하는 것만 못함을 내 몸이 알기 때문이다.
정상대 <훼어팩스, V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