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과 젊은이, 서로지간에 순서가....
“나이가 나이인 만큼...” 그래서 어떻다는 말은 다음 말을 들어보지 않아도 하여간에 뭔가에 대한 변명이고 뭔가에 대한 핑계를 대기위한 서론이다. 그런데, 이 말을 남이 나한테 해 줄 때에는 또 어떤 경우인가? 그래서 좋다는 얘기도 아니고 그래서 대접하겠다는 소리도 아닌 것 같
다. 나이가 나이인 만큼 그럴 수밖에 없다고 이해하고 봐 주겠다는 것인지 아니면 한심하고 할 수 없다는 것인지....
미국에서는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나이든 여자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것이 에티켓이 아니라고 알고 있다. 불편은 할망정 나이든 취급을 당하기 싫다는 미국 여자들. 그러니 정말로 행동도 불편한 백발의 할머니를 보아도 부축을 해주어야 할지 잠시 망설이곤 한다. 나이 든 미국 사람들이 여기저
기 아프다고 말하다가 웃으면서 ‘당신은 나이 먹지 말아요.(Don’t get old)’라고 말 하는 것을 듣곤 한다. 아니 어떻게 나이를 안 먹을 수 있단 말인가.
우리는 왜 이렇게 나이 드는 것에 부정적인 것일까. 신학과 철학과 심리학과 인류학을 다 들고 나온다 해도, 일단 주변에서 보는 나이든 사람들의 모습에서부터 두려움이 생기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 당시 중년이었던 어느 화가의 “나는 나이 들수록 더 멋있게 되고 싶다”고 한 말이 내 마음 한구석에 있었던가 보다. 한 10 여년이란 세월이 지나고 그야말로 오랜만에 그를 다시 만나보았을 때 예전보다 더 여유 있는 태도와 나이에서 오는 중후한 모습을 보면서 그 말이 새롭게
떠올랐다. 멋있게 나이 들려고 했던 노력의 결과가 아닐까. 나이 든 사람들로부터 푸근하고 멋있고 뭐든 배울 만하고 그래서 같이 있고 싶은 마음이 든다면 그래도 나이 드는 것을 싫어하게 될 것인가?
‘장유유서(長幼有序)’는 진리이다. 어른과 어린아이 사이에 서로지간의 순서가 있다는 것이지 여기에 누가 먼저라는 의미는 없는 것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우리는 별 생각 없이 장유유서를 마치 남존여비(男尊女卑)처럼, 즉 長尊幼卑로 받아드린 것이나 아닌지. 그러다가 나도 나중에는 ‘요즘 젊은것들은...’소리를 하며 나이든 것도 서러운데 대접도 못 받는 것 같아서 어거지를 부리는 그런 부담스런 노인이 되어버리는 것은 아닐지. 가는 세월이 눈에 보이듯 나뭇잎들이 떨어져가는 이때에, 우리가 정녕 나이에 대해 속수무책인가를 사색해본다. 늙지 않는 약, 몸에 좋다는 약은 다 찾아다니는 육체관리도 중요하지만, 늙어갈수록 ‘멋지다’ 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나의 정신건강 관리도 게을리 하지 않아야겠다고 다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