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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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띤의 스페인어 회화와 중남미 문화 산책 ¡Hola! amigo

2005-09-13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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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권 남미 ABC 3국과 스페인 제국

제397회. 스페인제국 10. 콘스탄티노플 함락 2
대포기술자 우르반의 설명을 묵묵히 듣고 있던 술탄의 눈은 바닥에 펼쳐진 도면에 못 박혀 있었다.
그날부터 우르반은 쿠르크 진영에 머물게 되었고 보수는 그가 콘스탄티노플에 제시했던 금액의 3배를 약속 받았다.
해가 바뀐 1453년 1월 술탄은 투르크 점령 지역 전역에 공식 동원령을 발동하였다. 전군이 도열한 가운데 술탄의 면전에서 대포의 첫 실험이 있었다.
모든 병사들은 포장을 제친 대포의 위용에 할 말을 잃었다. 대포라는 것이 지금까지 아무도 보지 못한 괴물이었던 것이다. 우르반의 거포로 이름 지어진 이 대포는 포신이 거의 10m(약 30피트) 정도인 데다가 돌로 된 포탄의 무게만도 600kg(약 1,300파운드)이나 되었다. 대포를 실은 포대도 서른 마리의 소가 좌우에서 끌어야 겨우 움직일 만큼 어마어마하였다.
아드리아노폴리 주민들에게 놀라지 않도록 미리 경고를 하고 시험 발사에 들어간 대포의 성능에 술탄을 매우 만족하였다. 포탄이 발사될 때 터진 굉음은 20km 사방에 울려 퍼졌고, 육중한 석제 포탄은 바람을 가르는 날카로운 소리를 내면서 1.5km나 날아가 커다란 폭음을 내면서 땅을 2m나 파고 들어가 꽂혔던 것이다.
즉시 술탄은 제2, 제3의 대포를 만들라는 명을 내렸고 본격적인 콘스탄티노플 공방을 준비하기 시작하였다.
당시 다급해진 동로마 제국의 황제인 콘스탄티누스는 거액의 조공을 바치는 조건으로 공격의 포기를 요청했으나 술탄은 냉정한 얼굴로 무조건 항복만을 요구했을 뿐이었다. 교섭은 결렬되고 황제는 바티칸과 서유럽 각국에 원군 파견을 요청하였다. 각국은 이 핑계 저 핑계로 거절하였고 베네치아만 해군을 파견하였다. 베네치아는 보스포루스 해협이 막혀 흑해 교역을 봉쇄 당하면 국운이 기울 정도로 심각한 입장이었기 때문이었다.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방어에 필요한 동원 가능한 모든 병사를 파악한 결과 영광에 빛나는 동로마 제국에서 전투에 참가할 수 있는 장정은 겨우 5,000명 정도였고 서구 원군을 합쳐도 총 7,000명을 넘지 않았다. 성을 공격할 투르크군의 군세는 총 10만으로 파악되었고, 대포와 거포는 총 12문이 성벽을 향해 설치되었다. 거포는 조작도 힘들고 토대가 못 버텨서 하루 7발 이상은 발사하기가 힘들었으나 피해는 막대하였다. 방어군들은 거포의 포탄이 바람을 가르는 소리를 낼 때마다 심장이 오그라드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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