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독립군의 아들

2005-08-16 (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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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운 삶

▶ 양민교/의사.리치몬드, VA

일본 학생들로 꽉 차 있는 교양학부 교실은 의외로 조용하기만 했다. 깐깐한 수학 교수의 시간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 이름난 제국 대학에 한국 학생이 둘이나 끼어 있다는 사실은 그 당시에는 놀랄만한 일이었다.
백상 군은 속으로 여러 가지 생각을 했다. 특히 유일한 한국인 친구 김 군이 항시 주눅이 들어있는 모습이 안타까웠기 때문이다. 그는 일본 학생들의 기를 꺾어보겠다고 기회를 벼르고 있는 것이다.
아니나다를까 자만심이 넘치는 다나카 교수는 시험문제를 칠판에 가득 채웠다. 그리고 의기양양하게 학생들이 자원해서 풀기를 청했다. 몇몇의 학생들이 재빨리 칠판에 달려가 문제를 풀려고 애쓴다. 적막이 감돌고 아무도 풀지 못하는 문제가 하나 남게 되자 백 군은 천천히 교단에 올랐다. 그리고 빠른 속도로 답을 써내려 갔다. 그는 마치 교수보다 더 자신 있게 보였다. 그가 다 마치고 돌아섰을 때 아무도 환호하거나 손뼉을 치는 학생이 없었다. 그 이후로는 다나카 교수는 칠판에 문제를 내지 않았다.
백 군은 만주에서 나고 정미소를 하시는 조부모 밑에서 자랐다. 정미소는 기차가 드나들 정도로 컸다. 아무도 그의 부모에 관해서 아는 사람이나, 이야기하는 사람이 없었다. 부족한 것이 없는 그는 조부모의 사랑 속에서 씩씩하게 자랐다. 그리고 고등학교 때 서울로 유학을 왔다. 그리고 자랑스런 사각모를 썼다.
그는 책과 씨름하며 열심히 공부도하고, 도장에 가서 권투며 유도를 익혔다. 그의 깡마른 체격은 강직하게 보였지만 내심은 의외로 따뜻했다. 많은 한국 학생들이 그를 따랐고 일본 학생들에게 모욕을 당하거나 얻어맞기만 하면 그는 쏜살같이 달려가서 일본 학생에게 본때를 보여주곤 했다. 그는 안주머니에 많은 돈을 넣고 다니며 돈이 떨어져 쩔쩔 매는 학생들에게 서슴지 않고 내주었다. 그래서 그는 친구들에게는 구세주고 일본 형사에게는 요주의 인물로 찍혔다.
어느 날 축구시합 끝에 사소한 일로 일본 학생과 시비가 붙자 일본 순사들은 주모자로 백 군을 연행해 갔다. 그리고 그는 서대문 형무소에 수감되었다. 명목은 소란죄였지만 그는 위험인물로 억류된 것이다. 그의 옆방에는 독립투사인 노인이 오늘내일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곧 숨이 넘어갈 듯한 노인의 거친 숨소리를 밤마다 들으며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간혹 그 노인이 그가 어렸을 때 듣던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다고도 여겨졌다.
어느 날 저녁에는 그 노인이 ‘백상아’ 라고 자기 이름을 부르는 것 같기도 해서 그는 소스라쳐 일어나 담에 귀를 바짝 대어봤다. 노인의 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백상 군은 다음날 간수가 지껄이는 소리를 들었다.
“독립을 한다고 떠들던 그 노인, 백상 뭐라는 자식 얼굴도 한번 못보고 가니...”
양민교/의사.리치몬드,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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