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여름
2005-07-22 (금) 12:00:00
여름이 성큼 다가왔다. 문을 열고 나서는 순간부터 후텁지근한 열기가 전신을 휘감는다. 달력을 보니 내일 모레가 중복이라고 쓰여있다. 여름은 1년 중 가장 화려하고 싶은 계절, 들이나 바다 그리고 도시에서도 살아 숨쉬는 천연색을 활짝 피우는 계절이다. 우리 집 뒷마당 건너에도 크고 작은 나무들이 한창 짙푸른 숲을 이루고 있다. 깊고 울창한 숲은 아니지만 도시환경 계획에 의해서 적당히 남겨진 숲이다. 오래된 집들을 부수고 새 집들이 들어서며 푸른 도시를 유지 할 수 있는 만큼만 남겨 둔 비율에 의한 것 일 것이다.
어떻게 하다보니 우리도 새 집들이 들어선 동네 안에서 살게 되었다. 조용하고 작은 시골마을에서 20여 년을 살다가 아이들이 고등학생 대학생으로 성장하다보니 덜렁 남겨진 우리 부부는 마음이 심드렁해짐을 느끼기 시작해 삶의 패턴을 바꾸고자 도시 속으로 들어와 정착을 하게 되었다.
도시의 삶은 정말이지 판이하게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해가 뜨고 해가 지는 것을 바라보며 맑은 공기 속에 자연을 즐기던 여유롭던 생활에서 별을 보고 하루를 시작하는 대부분의 사람들, 우리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다시 하늘에 별이 가득해 질 때에야 귀가를 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동네도 많이 다르다. 건설의 붐을 타고 지어진 새 집들의 행렬이 줄을 선다. 그 속에서 옛 마을의 흔적은 찾을래야 찾을 수도 없이 콘크리트 냄새가 가시지 않은 새 집들만이 웅장하게 옆으로 나란히 세워져간다. 한두 집만 건너면 내 집과 똑같은 모양을 하고 있는 집들이 즐비한데 오직 내 집이라고 표시 해 놓은 주소의 앞자리 번호만이 유일무이하게 표시되어 내 집 앞에 붙어 있다. 기계로 찍어 낸 국화빵처럼, 몇 가지 되지 않는 옵션 중에서 선택하려 하니 우리 집과 같은 똑같은 모양이 많을 수밖에. 어색하기만 한 내 집 같지 않은 내 집들이다.
거리상 가까이 살고는 있지만 정작 이웃들의 얼굴은 볼 새도 없이 하루하루가 지나간다. 어느 날 느지막한 아침 간단한 운동복 차림을 하고 동네 한 바퀴를 돌았다. 모두가 일터로 출근을 했는지 주차장은 텅 비어 있었고 마을의 한낮을 맞이하는 나는 동네 반장이나 된 듯 한 집 한 집 올려다보고 내려다보며 집 구경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순간 분주한 내적 삶을 제외한 이 시간만큼은 내가 살던 시골의 작은 마을인 쉐난도어를 연상케 한다.
오고 가는 차들도 뜸한 채로 정오를 보내다가 아이들이 학교에서 돌아오는
시간이 될 쯤에야 일터에 나갔던 사람들의 모습이 하나씩 둘씩 눈에 뜨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옆집 마당에도 가끔 사람들이 나타났다 사라지곤 한다. 그러나 결코 몇 분도 머무르지 않고 안으로 사라지는 이웃 집 사람과 언제쯤이면 인사를 나누며 정담을 나눌 수 있을까 생각을 한다.
미국에 이민 온 뒤로 여러 번 이사를 했다. 늘 작은 시골 마을을 품고 살다가 이제야 대도시라 할 수 있는 워싱턴에 정착했다. 시골 마을의 하늘 끝까지 울려 퍼지던 귀에 익은 젖소들의 하품 소리가 그립다. 7월의 후텁지근한 무더위 속에서 낯선 도시의 풍경을 발견한다. 빈 틈 없이 러시아워에 걸려 있는 차량들은 폭염 같은 열기를 내 뿜으며 흘러가는 시간을 외면한 채 아주 천천히 움직인다. 표정 없는 얼굴로 혼자 중얼거리는 사람들. 귀에는 이어폰을 꽂고 보이지 않는 상대를 향한 대화에 심취한 현대사회의 커뮤니케이션 공해를 마시며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정애경 워싱턴 여류수필가협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