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최고 서정시인 리처드 에버하트

2005-06-27 (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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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백 칼럼

▶ 백 순 / 화백문화 미주지부회장

지난 9일 미국의 최고서정시인인 리처드 에버하트(Richard Eberhart)가 101세로 뉴햄프셔 하노바 자택에서 별세했다. 1904년 4월 5일 미네소타주 오스틴 시의 버 오크라 불리우는 40에이커의 농장에서 태어나 유년기를 보낸 미 중서부 대지의 농촌시인이다. 그러나 그는 미네소타대학과 미국의 명문 아이비 리그 대학 중 하나인 다트머스 대학에서 로버트 프로스트와 같이 수학하였고, 켐브리치 대학교의 세인트 존스 대학에서 학사, 석사를 받고, 하바드 대학에서 박사학위 과정까지 공부한 지성시인이기도 하다.
에버하트 시인은 많은 명문대학에서 강의를 하여오다가 1956년이후 1970년 은퇴할 때까지 다트머스 대학의 영어교수와 대학주제시인으로 활동하여 왔으며, 지난 몇 년 동안 육신의 노쇠로 누워 있을 때를 빼놓고는 거의 60여 년 동안 왕성한 시작활동을 하여 1930년 ‘A Bravery of Earth’의 출판을 시작으로 10여 권의 시집을 출간한 왕성한 시인이다. 그는 미국의 3대시상인 Pulitzer, Bollingen, National Book Award 등을 모두 받은 미국의 저명한 시인이다.
그는 많은 시평론가들과 일반독자들이 지칭하는 바와 같이 미국에서 20세기의 최고 서정시인이지만, 그의 서정시는 인간의 서정적 시의 세계를 펼치면서 동시에 생명과 죽음이라는 심각한 형이상학적이고 철학적인 이슈를 탐색하고 있는 ‘서정적 형이상학 시인’이라고 칭할 수 있을 것이다. 그의 시는 짧은 구절과 적은 수의 라임과 간략한 추상적인 상징을 사용하면서, 한편으로는 ‘변덕’(Mutability)과 ‘죽음’(Mortality)에 대응하여 다른 한편으로는 ‘추상적 과념의 영원영역’(Eternal Realm of Abstract Ideas)과 팽팽한 관계를 시의 소재로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리처드 에버하트 서정시의 주제인 ‘죽음성’과 ‘영원성’이 어떻게 팽팽한 긴장관계로 표출되는 지를 그의 대표적인 시 몇 편을 통하여 알아보기로 하자.
/너는 생각하겠지 공습폭격의 공포가 /하나님을 일깨워 회개하게 하리라고; 무한한 공간이 /아직도 침묵을 지키고 있다. 하나님은 충격으로 얼룩진 얼굴들을 바라보리라. /역사도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겠지 //인간은 어리석게 만들어 져 /자기의 어리석음을 보게되는가? /하나님은 그 정의대로 무관심하신 것인가? /우리 모두를 넘어서. /영원한 진리란 인간의 투쟁하는 영혼인가? /괴물이 스스로의 생동력을 갖고 날뛰고 있는 인간의 투쟁하는 영혼인가? // (‘A Fury of Aerial Bombardment’).
시인이 미국해군보충병으로 2차세계대전에 참전하여 경험한 공습폭격이 가져다주는 공포를 읊은 시로서 2차세계대전에 관한 최고의 미국시로 칭송 받는 시이다. 공습폭격은 인간의 생명을 말살하는 죽음이지만 공습폭격이 오는 하늘 저편을 바라보면 무한한 공간의 침묵이 있음을 시인은 직감한다. 시인은 ‘공습폭격의 공포’라는 죽음성에, ‘침묵의 무한한 공간’이라는 영원성을 가져 와서 팽팽한 긴장관계를 이루고 있다.
/6월 황금색의 들 가운데 /나는 죽어 누워 있는 그라운드호그를 보았다 /그는 죽어 누워 있고 나의 감각이 흔들리었다 /그리고 심령은 우리의 노출된 연약함을 탈출하였다 /그곳 낮은 곳 무더운 여름 /그의 형태는 감지할 수 없도록 변질되기 시작하였고 /나의 감각을 희미하게 비틀거리게 하여 /그 안에서 포학하게 작동하는 자연을 본다/ (‘The Groundhog’).
이 시는 에버하트의 가장 유명한 시중의 하나로 꼽히는 시이다. 그는 하나의 동물인 그라운드호그의 죽음을 대하면서 자연의 섭리를 목격하는 종교적인 영의 세계에까지 발전시키고 있다. 이 시는 ‘그라운드호그의 죽음’이라는 죽음성과 ‘심령’ ‘자연’이라는 영원성을 대비시키고 있다. 그는 “시란 일면 죽음에 대항하는 주문이다. 시는 너희가 그 때에 어디에서 왔고 지금 어디에 있는지를 알게 해주는 이정표이다”라고 말할 정도로 시의 영성을 강조한다.
/나는 추운 열린 공간에 나와 서 있다 /일식의 요소를 보기 위하여 /일식은 그것의 완전한 어두움이다 //나는 추움 안에서 포취에 서 있다 /그토록 완전한 어떤 것도 생각할 수 없었다 /사람들이 어두움의 직면에서 빛을 소망함에 따라 / (‘The Eclipse’)
시인은 추운 날 광활한 공간을 바라보며 일식을 경험하게 된다. 태양이 달에 완전히 가리우는 순간 완전한 어두움을 본다. 어두움이 완전할 수 있었던 것은 일식이 지나면 빛이 올 것을 희망하기 때문이다. ‘일식의 어두움’은 죽음성이요 ‘빛의 소망’은 영원성이다.
백 순 / 화백문화 미주지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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