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는 5월을 가정의 달이라 해서 모두들 갑자기 효를 좌우명으로 살고 있는 듯 법석을 부린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이 있는 것은 그날만 고마움을 알라는 것은 아닐텐데 마치 그 하루에 일년간의 효도를 다하겠다는 것 같다.
임금과 스승과 아버지는 군사부일체라 하여 하나같이 공경하고 섬기라 했는데 요즘에는 많이 퇴색되어 가는 듯 하다. 임금 시대의 백성이 행복했는지, 사부장 시대의 가정이 화평했는지, 회초리 훈장이 인성교육자였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지금 사회는 ‘공자가 죽어서’ 세상이 변했다.
가정은 아버지가 중심이고 우선이어야 하는데 지금은 엄마가 중심이고 아이들이 우선이다. 그래서 손자가 1번이고 며느리는 2번이고 아들이 3번이란다. 더 나가면 가정부가 4번이고 강아지나 고양이가 5번이고 할아버지 할머니는 6번이란다.
어쩌다 순서가 이렇게 바뀌었는지 모르겠다. 하기야 지금은 맞벌이 시대로 부인도 남편만큼 배웠고 능력도 있어 돈 많이 벌어서 웰빙 생활하겠다는 데 굳이 말릴 수 없고 옛날처럼 자식 많이 낳아서 반타작으로 키우던 시대가 아니라, 하나 둘만 키워서 최고 만들겠다는데 어쩌겠는가.
집에서 여자 목소리가 울타리 밖을 나가면 집안 망신이라고 해서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고 했다. 이 말을 어떤 사람이 영어로 “우먼 치킨 꼬꼬댁 하우스 폭싹”이라고 했다는데 지금은 남녀 평등을 지나 여자 상위시대가 되어 “우먼 치킨 꼬꼬댁 하우스 OK”가 되었다.
남자 갈비뼈를 뽑아 여자를 만들어 주었더니 남자의 고마움이나 권위는 땅에 떨어지고 내 갈비뼈에게 매맞고 사는 남자 수난시대가 되었다. 다행히 육박전 매는 맞지 않아도 잔소리 매를 맞는 것쯤은 가정의 평화를 위해 감수해야 한다. 하나님 제발 내 갈비뼈 돌려주십시오 라고 기도하고 싶은 심정이겠다.
이 곳 미국에는 어머니날과 아버지날이 있다. 부부 일신인데 왜 따로 따로 있는지 모르겠다.
어머니날에는 꽃집이 바쁘고 식당에는 빨간 꽃 가슴에 단 어머니를 앞세워 가족들이 길게 줄을 선다. 어머니들은 신바람 나지만 아버지는 마누라 치마꼬리 붙들고 가서 밥이나 한 그릇 얻어먹고 오는 꼴이다.
아버지날은 6월에 있다. 아버지날에는 꽃집도 식당도 한가하다. 꽃집은 파리 날리고 식당에는 기러기 아빠들만 비실비실 찾아든단다. 교회에서도 아버지날에는 꽃 달아 주는 것도 없다.
노인잔치나 노인 아파트에 가보면 할머니가 할아버지보다 절대적으로 많다. 남자가 여자보다 먼저 죽는다는 것이겠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는데 여자보다 10년, 20년 먼저 가는 아버지가 늙어서 찬밥신세로 살다 가서야 되겠는가. 오래 사는 엄마는 열번 스무번 어머니날 맞이할 수 있으니 먼저 가시는 아버지에게 더 많은 효도를 해야되는 것 아닌가.
경제권도 발언권도 없는 아버지, 할아버지들. 어깨에 계급장은 떼어놓았지만 돈벌이로 가정 지킴이로 싸우며 살아온 가슴에 훈장은 그래도 인정해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아버지 눈에 눈물은 보이지 않지만 아버지 술잔에는 눈물이 절반’이라고 했다. 세상 아들 딸들이여. 어머니보다 먼저 가시는 아버지를 불쌍히 생각하고 금년부터는 아버지날에도 어머니날처럼 효도하시기 바란다. 그대들도 머지 않아 낙엽 같은 인생 되는 날 찾아 올테니.
윤학재/워싱턴 문인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