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KTX를 통해본 한국의 5월

2005-05-25 (수)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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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과 생각

▶ 백향민 /영어 음성학자

최근 KTX 라고 부르는 고속철을 타고 한국의 한 지방도시를 방문했다. 시속 300킬로미터로 달리는 고속철은 쾌적했다. 주행거리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라는 판단이 어렵지 않게 터널이 많았는데 터널을 통과하는 동안은 속도의 영향으로 진동이 커서 귀는 물론 몸도 울리는 단점도 있었다.
완성까지 우여곡절을 겪었다는 고속철은 아직 한국민 속에 뿌리를 내리지 못한 듯 이용객이 적어 적자를 면하지 못하고 있다고 하나 한반도를 보다 적극적으로 일일 생활권으로 만드는데 공헌하고 있는 것은 분명했다.
차창을 통해 펼쳐지는 계절의 여왕이라는 5월의 산들은 짙푸른 녹색이었다. 수 십년 전의 헐벗은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 농촌의 정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농촌은 한창 바쁜 모내기철인 듯 했는데 현장은 오히려 한가로워 보였다. 예전의 모습과는 커다란 차이가 있었다.
첫째 논밭의 모양이었다. 기억 속에 남아있는 그 시절의 모습은 퍼즐의 조각같이 구불거리고 있었다. 그러나 창밖으로 보이는 논밭의 모양은 장애가 없으면 거의 직사각형의 보기 좋은 모습이었다.
둘째는 모내기하는 모습이었다. 예전에는 많은 사람들이 한줄로 늘어서서 허리를 구부려 모내기하는 고전적 방법이 전형이었다.
그래서 모내기철이면 일손이 부족해 나라의 지도자도 공무원도 군인도 학생까지도 모내기를 돕는 것은 당시의 상식이었다.
그러나 차창 밖의 농촌에서는 농부 한사람만이 모내기 차를 타고 기계적 방법으로 모내기를 하고 있었다. 논두렁에는 농부가 타고 왔을 차만이 농부의 모내기를 지켜보고 있었다. 예전의 농촌의 모내기하는 장면이 겹쳐지는데 현재의 장소와 예전의 장소가 쉽게 일치되지 못했다. 변화한 한국농촌의 모습이었다.
이렇게 발전한 한국의 농촌을 보면서 가슴 뿌듯함이 느껴졌다. 30년전 일본의 농촌을 보고 가졌던 부러움이 더 이상 남아있지 않았다.
그런데 그 순간 불현듯 조국을 대물려온 가난으로부터 벗어나게 하고자 노심초사했던 한 지도자의 모습이 떠올랐음은 지나친 비약이었나.
백향민 /영어 음성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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