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어느 캠핑 이야기

2005-05-02 (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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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성의 창

▶ 최형란/주부

재작년 9월초니까, 아마도 노동절 연휴 때였던 것 같다. 우리는 캠핑 장비를 차에 싣고 무작정 여행을 떠났는데, 일단 가 봐서 캠핑할 자리가 없으면 준비해 간 저녁이나 먹고, 바로 집으로 내려오자는 생각으로, 한번도 가지 않았던 북쪽 소노마 해안 쪽으로 올라갔다. 바닷가 절벽 위에 캠핑 장이 하나 있었고, 아주 운 좋게도 바다가 바로 가까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곳에 텐트를 칠 수 있었다.
절벽 아래 바다로 나 있는 길을 따라 내려가 잠시 바닷물에서 아이들과 놀고 나서, 불을 피워 저녁으로 갈비를 구워 먹고, 모닥불을 활활 피워 놓은 후, 캠핑 의자에 앉아서 하늘을 온통 붉게 물들이면서 태평양에 지는 해를 바라보았다. 아이들은 모닥불에 마시 멜로우를 구워 먹었고, 나는 그날 너무 정신없이 떠나느라, 깜박 잊고 온 고구마를 생각하면서 내내 가슴을 쳐야 했다.
그런데, 밤이 으슥해지고 사방이 고요한데 우리 옆의 LA에서 온 한인들 텐트에서는 새벽까지 어쩌면 이렇게 맛있냐 는 탄성이 계속 흘러 나왔다. 그 소리에 식탐이 많은 남편은 잠을 이루지 못하다가, 마침내 밤참으로 라면을 두개 끓여 먹고 배탈이 나서 밤새도록 화장실을 들락거려야 했다.
다음날 아침, 일찍부터 그들은 스쿠버 다이빙 장비를 갖추더니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서는, 떼 지어 바닷물로 뛰어 드는 것이었고, 그제야, 우리는 그들이 지난밤에 맛있다고 감탄했던 음식의 정체를 알아냈다. 바로 스쿠버 다이빙해서 잡아 온 싱싱한 생선회와 허니듀 만큼 커다란 전복이었다. 나와 남편은 그렇게 큰 전복을 평생 본 적이 없었기에 그게 무언지도 몰랐는데, 해산물을 좋아하는 남편은 전복 주위를 배회하다가 결국 어떤 미국 사람한테 기념으로 커다란 전복 껍질을 하나 얻었고, 이사할 때도 버리질 못하고, 지금도 뒷마당에 고이 모셔놨다.
그리고 남편은 전복을 잘 따기 위해, 지난해 한국에 갔을 때 라식 수술을 했다. 물이 빠지는 시기를 잘 맞추면 깊이 들어가지 않아도 전복을 딸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전복 따기 동호회 모임에 끼어서 같이 갈 계획을 세워 놓고, 올해는 기필코 태평양에서 큰 전복을 따고야 말겠다는 의지를 불사르고 있다.
올해는 남편이 따온 전복 회를 먹을 수 있을까. 꼭 전복을 못 따더라도, 아침에 싸늘한 공기를 마시며, 눈에 푸른 바다를 가득 담고, 모닥불 앞에서 마시는 따뜻한 커피 한 잔만으로도 캠핑의 즐거움은 충분하지 않을까.
최형란/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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