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강 화백의 듀엣 전을 기다리며
2005-04-28 (목) 12:00:00
작년에 한국문화원에 열린 석강 화백의 그림 전시회에 갈 기회가 있었다. 전시회에서는 평소에 말로만 접하던 록키 선경을 그림으로 접하였다. 화백의 그림 속에서는, 머리에는 만년설을 이고 있어도, 천지창조 때 뜨겁게 분출하며 흐르던 용암의 속살 기운이 지금도 그 성산(聖山) 여기저기에서 비죽비죽 보이고 있었고, 계곡마다 구비구비 흐르는 설빙수(雪氷水)는 발이 시리도록 차가워도, 산등성이에는 화사한 봄 꽃 노래 기운이 자지러지고 있었다.
화려한 색동무늬의 그림들은, 지금은 너무 멀리 떠나와 다 잊어버리고 있던 나의 유년시절, 너무 오래 전에 떠나와 다 잊어버리고 있던 유년시절로 나를 데리고 갔다. 거기에서 색동무늬의 그림들은, 어릴 적부터 내 안에 있었던 나의 구김살 없고 명랑한 기를 되살려주고 있었다. 비록 삶이 힘들지라도, 영(靈)적인 삶을 살아가라고, 밝고 기쁘게 살아가라고 말없는 은유(Metaphor)로 내 안에 내공의 기(氣)를 쏟아 부어 넣어주고 있었다.
모든 예술은 예술가의 사상을 자기의 특유한 방식으로 그 예술에 접하는 이에게 은연중에 세뇌시키는 간접 최면술이다. 그 최면의 결과가 긍정적인가 또는 부정적인가는 전적으로 그 예술가의 인격에 달려있고, 그 최면의 효과가 큰지 작은지는 그 예술가의 내공의 힘에 달려있을 것이다.
석강 화백은 태고의 선경을 통해 성산(聖山)의 기(氣)를 전해주는 도인(道人)이며, 잃어버린 시간을 색동그림으로 되찾아주는 마술사이며, 오래 전에 잊어버린 유년시절의 노래를 되찾아주는 음악가이다. 그는 ‘산 높고 물 맑은 우리 마을에’ ‘엄마 엄마 이리 와 요것 보세요’ ‘시냇물은 졸졸졸졸’ ‘산골짝에 다람쥐‘ 등 온갖 그리운 것들을 다 불러낸다. 광복 60년 우리의 역사를 일깨우는 석강 화백의 전시회가 시작되는 29일이 기다려진다.
김인기/시인, 워싱턴 문인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