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2004-12-21 (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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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각하는 삶

▶ 정주식/스프링필드, VA

석양이 지면 하루를 반성하고, 연말이 가까이 오면 한해를 결산하고, 나이가 들면 인생을 되돌아보는 것이 우리의 삶인 것 같다.
며칠 전 시추 강아지 두 마리를 샀다. 한 마리를 사러 갔는데 남매가 떨어지면 얼마나 슬플까 생각이 들어 두 남매를 샀다. 며칠 후 생일을 물어보려 어미개가 있는 집에 전화를 걸었더니 강아지들이 울지 않고 잘 지내느냐고 했다. 잘 논다니까 어미를 잊었나 보다 하면서 어미 개는 새끼를 찾으려고 울면서 안절부절못한다 한다. 나도 모르게 눈가에 이슬이 맺히며 돌아가신 부모님 생각에 잠시 상념에 젖었다.
이민 올 때 부모님 마음을 헤아려 보지도 못하고, 전화 자주 못하고, 찾아 뵙지도 못하고, 몇 년이 흘러 안정을 찾아 가려 할 때는 이미 병상에 계실 때였다.
부모님께서는 자식 걱정에 잠도 못 주무시고 얼마나 안절부절못하셨을까. 생각하면 가슴이 저려온다.
지금 여든이신 장모님만 혼자 계시니 더 후회하기 전에 내년에는 꼭 찾아뵈어야겠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지난 1일 타계하신 대여 김춘수 시인의 ‘꽃’의 마지막 구절이다.
이 시 구절은 나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다. 25년 전 아내가 내게 보낸 연서에 이것을 적어보냈다. 아내는 나에게 잊어지지 않는 눈짓이 되고 싶었나 보다.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라 정 반 합을 이루고자, 서로가 화내고 미워하며, 돌아앉아 울 때면 불쌍하고 후회되고, 하면서 서로 위하고 사랑하면서, 그리고 미국 땅까지 와서 고생할 때면 아내의 손을 잡아주며 희망을 가지게 하면서, 참 세월이 빠른 것을 느꼈다.
우리는 잠을 잘 때 이런 말을 한다. ‘두 사람이 누우면 따뜻하거니와 한 사람이면 어찌 따뜻하랴’(전 4:11) 바쁘게 살면서 서로가 감춰진 귀한 보배인 것을 모르고 사는 날이 많았다고 생각한다. 지금부터라도 서로 사랑하며, 귀하게 여기며 살아보자.
며칠 전 고국에서 수능시험 부정으로 우리의 어린 자녀들이 추운 겨울에 감옥 가는 것을 볼 때 부모로서 찢어지는 아픔을 느꼈다. 우리의 교육제도를 탓하기 이전에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무엇을 가르쳐왔는가를 뼈를 깎는 아픔으로 반성해야겠다.
흔히 자녀교육 때문에 이민을 왔다고 하는데 살기 바빠서 어린아이들을 혼자 집에 있게 하지 않았나 뒤돌아보아야겠다. 부모들에게 많은 스트레스가 있지만 자녀들에게는 더 많은 스트레스가 있다는 말을 딸아이에게서 들었을 때 책임이 무거웠다.
‘나의 깨달은 것이 이것이라 곧 하나님이 사람을 정직하게 지으셨으나 사람은 많은 꾀를 낸 것이니라’(전 7:29) 정직하게 살도록 가르쳐주자. 부모도 정직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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