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제망부가

2004-12-14 (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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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부순/버크,VA

지금 창밖에는 아버지와 연세가 같으신 아저씨께서 여린 빗줄기에도 마다하지 않으시고 열심히 걷고 계시는군요. 그 분의 모습을 뵙자니 아버지의 건강하실 때의 모습이 떠올라 눈물을 짓게 하는군요.
어차피 모두 유한한 생명을 얻고는 하늘의 부르심이 있으며 아무리 소중하고 급한 일이 있다해도 순종하여 정겨운 이들의 곁을 떠나야한다 함도 알고, 또 다른 사람의 죽음에 관해서는 무심하던 마음이 내 아버지께서 한 번 가시고 나면 결코 되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나가셨음에 서운한 마음을 무엇으로라도 위로를 얻어들 수가 없었습니다. 아버지의 자상하신 마음을 귀찮게 여겼던 저의 잘못을 생각합니다.
아버지께서는 북에 두고 오신 지라 언제나 마음을 쓰시던 두 아들을 못 만나시고 돌아가심에 못내 아쉬워서 두 눈을 못 감으셨습니다. 오빠에게 소식을 전할 수 있으며 아버지의 심정을 전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모든 사람들과 같은 마음을 지닌 저는 이왕 가신 분보다 살아 계시지만 치매를 보이시는 엄마 걱정을 더 하고 있음을 어쩔 수가 없습니다. 아버지가 안 계셔서 엄마가 어찌 지내실 지 염려가 됩니다. 사람이 늙으면 어린아이가 된답니다. 엄마께서 일을 서투르게 하시면 당장 도우시는 모습을 뵈며, 지난 65년 동안 아버지께서는 엄마의 부군으로 자리하신 것이 아니라 다정한 오라비, 또는 아버지의 위치에서 엄마를 보살펴주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신 후 깨달은 것은 세상 모두는 각자이고 혈육이란 것은 정말 무시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제 부모님의 슬픔을 다른 사람들은 느낄 수가 없는 것이다 싶습니다.
목사님을 위시해 많은 분들이 오셨습니다. 하지만 오신 분들이 산 자를 위로하러 오셨는지 아버지의 영혼을 기쁘게 하려함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여간 누가 위로를 얻든지 주위에 사람이 있음을 다행으로 여깁니다.
사람인 우리는 하나님에게서, 또 사람에게서 슬픔의 위로를 받지만 결국은 자기 혼자만이 해결해야함에, 살아남은 자는 시간으로부터 도움을 얻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며 슬픔을 이겨봅니다.
많이 약해지셨는데, 머나먼 길 살펴 가십시오.
아직도 배냇짓을 하는 막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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