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영전에
2004-12-09 (목) 12:00:00
▶ 살며 생각하며
▶ 채수희 <워싱턴 여류수필가협회>
창 밖 찬바람 속에서도 침묵을 지키는 나목을 바라봅니다. 그래도 ‘저 나무는 내년 봄이면 새 생명을 잉태하는데...’ 하는 생각에 젖어 봅니다.
그러나 당신은 영원히 돌아오지 못하는 하늘나라로 떠났군요.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죽음이라는 숙명의 이별을 좀 일찍 했을 뿐이라는 생각으로 위안을 삼아 봅니다.
오랜 세월의 투병을 지켜보며 꿋꿋이 견디어온 강인한 인내력 속에서 끝내는 조용히 잠자듯이 떠난 당신. 당신의 마지막은 저에게 많은 위로와 평화를 가만히 스며들게 하였지요. 짧지 않은 결혼생활 34년. 지난 일들이 주마등처럼 떠오릅니다. 그 어려웠던 15년간의 투병과 그 고통의 기슭을 함께 걸으며 참으로 많은 인생을 배운 기분입니다.
‘생생유전’이란 말이 있습니다. 이세상 모든 것은 세월이 갈수록 소멸되어진다고 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삶도 소멸하지만 성경 요한복음 11장 25절에는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 하리” 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불과 5개월 전에 손자가 태어나고 당신의 임종을 보면서 인생의 생(生)과 사(死)가 맞닿은 아이러니를 보며 인생 무상을 다시금 느낍니다.
2004년 초 위험한 고비를 넘기고 저에게 “당신 책 출판은 내가 살아있을 때 내면 좋겠는데...” 했지요. 그때 저는 반신반의했는데 기적같이 올해 책이 나오고 출판기념회가 당신의 마지막 외출이 되었지요. 모두가 하느님의 섭리임을 느낍니다.
누구나 죽음을 생각하면 지난 세월에 대한 회한(悔恨)이 가슴에 파도처럼 밀려오는 것이 인생이겠지요. 이제 저는 천사같이 해맑은 세 손자 바라보며 더 좋은 글 쓰면서 당신께서 못 다한 삶까지 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사랑하는 당신, 이제는 이세상의 모든 고통과 멍에에서 벗어나 오직 주님 품안에서 편히 쉬시길 기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