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에셀나무] 아미쉬 마을과 보수

2004-12-09 (목)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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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스탄틴 로마 황제가 313년 예수님을 믿기 시작해 325년 기독교를 국교로 인정했습니다. 로마의 박해 속에 있던 크리스천의 승리였지만 국교로 인정된 기독교는 황제의 통치 도구로 사용되면서 세속화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후 1200여 년 동안 중세의 암흑기 시대를 거쳐 종
교 혁명이 일어난 뒤 로마 가톨릭 교회와 분리됐습니다.
영국에서는 성공회, 독일과 스칸디나비아 국가에서는 루터 교회가 생겨났습니다. 스위스, 프랑스, 네덜란드, 스코틀랜드에서는 개혁 교회에
이어 재 침례교회, 메노나이트, 아미쉬, 침례교, 형제 교회 등이 차례로 생겨나 정교 분리를 주장했습니다.

그 중 스위스의 과격 개혁파 즈빙글 리가 이끌던 재 침례교회는 1525년 콘라드 그레벨의 인도로 떨어져 나와 메노나이트 교를 형성했습니다. 메노나이트 교는 유아 세례를 반대하고 오직 믿음의 고백이 있는 사람들이 다시 세례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름은 1536년 이 그룹에 조인한 로마 카톨릭 교회의 네덜란드 출신 사제였던 Menno Simons의 이름을 따서 불렸습니다. 이들은 강력하게 로마 가톨릭 정부의 권력 앞에서 저항하였기에 숱한 순교자를 내었고 네덜란드, 스위스와 남부 독일 등지로 피해 살았습니다.

그 와중에 메노나이트교도 성경대로 살지 않는 교인들을 추방해야 한다고 주장한 스위스의 Jacob Amman 이라는 극 보수파 지도자를 중심으로 일부가 떨어져 나왔습니다. 그의 이름을 따라서 이 분파는 아미쉬(Amish)라고 불립니다. 미국에는 현재 22만여 명의 아미쉬가 29개 주에 흩어져 살고 있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필라델피아에서 1시간 거리에 있는 랭캐스터 지역에 2만여 명이 집단으로 살고 있습니다. 그들은 마차를 타고 다니며, 전기를 쓰지 않고, 전화선도 허락하지 않습니다. 초기에는 옷에 단추도 달지 않았답니다. 단추도 보석이기에 사치스럽고, 전화는 외부 세속 세계와의 연결이기 때문이랍니다. 그러나 요즈음에는 셀룰러폰을 쓰고 있습니다. 전화선이 없기에 괜찮은 것이고 단추를 달아 입어도 겉에 외투를 입어 남이 보이지 않게 가리면 괜찮다는 것입니다.

보수가 예수님에게 가까이 가는 것이 아니라 외적인 것에 너무 치우치고 옛날 원시 시대로 복귀하는 의미라면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보수를 이렇게 이해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외적인 보수보다는 내적인 보수, 즉 심령이 변화하여 진심으로 예수님을 사랑하고 그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주님과 나와 이웃을 위한 보수일 것입니다. 내적인 보수로 삽시다. 오늘도 에셀 나무를 심으며…

글 :호성기 목사(필라 안디옥 교회 담임)
삽화 : 오지연(일러스트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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