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할아버지를 처음 뵙게 된 것은 아마 금년 정월이었던 것 같다. 90을 훨씬 넘긴 연세임에도 불구하고 약간 부자유스러운 걸음걸이를 빼고는 어디 한 군데 불편함이 없으신 할아버지. 같은 방에 기거하는, 두 다리를 쓰지 못하는 젊은 흑인이 자신을 괄시한다며 하소연을 해 오셨다.
그 흑인 아저씨를 붙들고 전 후 사정을 들어보니, 할아버지가 잠 잘 시간이 되면 화장실 불을 환히 밝힌 채 문을 열어 놓고 빨래를 해서 잠을 잘 수가 없다고 하였다. 나는 그 아저씨에게 정중히 사과를 하고, 할아버지께서 연세가 높으시고 영어를 못하시니 이해 해 주기를 청하고는 다시 할아버지께 흑인 아저씨의 어려움을 이야기 해 드렸다. 할아버지는 말이 통하지 않는 것이 가장 불편해서 견딜 수가 없으시다고 하셨다. 그 다음부터 나는 할아버지뿐만 아니라 그 곳에 계시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통역관이 되었다. 어디가 아파도, 의사가 와도 말이 통하지 않아 제대로 전달 되지 않았고, 무슨 약인지도 모르고 주는 대로 받아 먹기가 일쑤였다. 할아버지께서 걸으실 때 마다 몹시 불편해 하시는 것을 보고 지팡이를 하나 마련해 드렸더니, 온 방을 다니시며 자랑 하시는 바람에 나는 할머니 할아버지는 물론, 그곳에 있는 간호사들에게도 인사를 받아야만 했다.
식당만 가면 회덮밥을 꼭 드시고, 드라이브라도 시켜 드리면 그저 좋아서 싱글벙글하신다. 그러시던 할아버지께서 얼마 전 부터 자꾸 어지럽다고 하시고 또 춥다고 하셔서 괜히 걱정이 앞선다. 먼저 가신 할머니가 많이 보고싶다고 하시던 할아버지, 자주 찾아오지 않는 자식들이 원망스럽다던 할아버지, 멀리 있는 자식이 그리워 눈시울을 적시던 할아버지, 얼마 전엔 할머니가 꿈에 보였다며 “할멈이 이젠 날 데려 가려나” 하신다.
“죽기 전에 자식들이나 다 만나 봐야 할텐데” 할아버지의 그 말씀을 듣는 순간 나도 모르게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연세는 높으셨지만, 치매가 있어 정신이 없는 것도 아니요, 중풍이 와서 몸을 못쓰는 것도 아니건만 돌보는 이 없고 찾아오는 자식이 없어 할아버지는 외롭고 서러우셨다, 할아버지는 ‘누구 방에 갔더니 아들 딸들이 음식을 들고 와서 법석을 떠는 것을 보니 많이 부럽더라’는 말씀을 곧잘 하셨다.
어디 아들 딸만 왔겠는가. 손자 손녀도 찾아와서, 재롱 떠는 모습도 보셨으리라, 그런 광경을 바라보며 할아버지는 자신의 처지가 많이도 야속하고 고달팠으리라. 다 떨어지고 색이 바랜 옷을 아들이 준 것이라며 서랍 속에 소중히 간직하고 계시는 할아버지, 언제쯤이나 사랑하는 그 아들을 만나 볼 수 있으시려는지.
나와 함께 나가시길 좋아하시던 할아버지께서 오늘은 몸이 아프시다며 거절하신다. 조금 있으면 겨울이 닥칠 터인데 추운 겨울이 오기 전에 어디 야외라도 모시고 가야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