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종일 본가

2004-10-07 (목)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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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숙자/수필가

노인 문제가 날로 심각하게 대두되고 있다. 그것이 어제오늘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나 근자에 자녀가 있었음에도 불고하고 죽은지 며칠이 지난 후 발견된 한 할머니의 죽음을 보며 다시 한번 노인 문제에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게 된다.
양로병원에 입원해 계신 노인들을 보면 자녀들이 자주 찾아온다는 분이 별로 없다. 그 곳에 계신 분들은 한결같이 자신의 자녀들이 효자, 효녀라고 한다. 다만 생업에 바빠 찾아오지 못할 뿐이라고. 1년에 한 번 정도도 찾아오지 않는 자녀들이라 해도 살기가 바빠 그럴 것이라고 스스로 위안을 하며 지낸다.
노인들이 가장 견디기 힘들어하는 것은 외로움이다. 어느 할머니는 해지는 때가 가장 싫다고 한다. 낮에는 오가는 사람 구경이라도 할 수 있으나 해가 지고 나면 인적이 끊겨 더욱 쓸쓸하다고.
세월이 흐르면 늙는 것은 당연한 일이거늘 어찌 이 세대는 낳아주고 키워주신 부모님께 관심을 갖지 않는지 참으로 개탄할 노릇이다.
고구려 때 고려장이라는 제도가 있을 때였다. 어느 날 한 사람이 어린 아들과 함께 병든 노모를 지게에 지고 산 속으로 들어갔다. 너무 가난하여 한 입이라도 덜어 보려고 한 일이지만 인간으로는 차마 할 수 없다는 생각에 눈물로 노모와 작별했다. 반쯤 내려오다가 등에 진 지게가 어머니를 지고 올라갈 때보다 더 무겁게 가슴을 짓눌러 지게를 벗어 멀리 던졌다. 그러자 어린 아들이 재빠르게 지게를 다시 주어 아버지에게 갖다 주었다.
“아버지, 이 지게가 있어야 다음에 제가 아버지를 갖다 버릴 때 쓰지요.”
그는 그 길로 다시 산 속으로 들어가 노모를 모시고 왔다고 한다.
나의 친구인 영은 요즘 같은 세대에 좋은 귀감이 되고 있다. 그 친구는 외아들에게 출가하여 홀 시어머니를 34년 동안 정성을 다해 봉양했다. 시어머니가 한식을 좋아하시기에 매일 아침에 따뜻한 밥을 지어 드렸고 자녀들도 어머니를 본 받아 할머니를 정성껏 모셨다.
친구 영은 가정상담소의 봉사자로 일 하면서 빈틈없이 가정생활과 봉사활동을 병행해 나갔다.
시어머니가 연로해 지시면서 치매로 가족들이 힘든 기간을 보냈으나 양로병원을 마다하고 얼마 전 돌아가실 때까지 집에서 어머니의 수족이 되어 드렸다. 그런데도 친구는 자신의 부족했음을 탓했다.
가신 분에 대한 후회는 끝이 없는 법, 여기 아버지가 남기신 쓸쓸한 일기장을 보며 애통해 하는 한 아들의 마음을 헤아려 본다.
“아버님 돌아가신 후/ 남기신 일기장 한 권을 들고 왔다/ 모년 모일 종일 본가/ 종일 본가가/ 하루 종일 집에만 계셨다는 이야기다/ 이 종일 본가가/ 전체의 팔 할이 훨씬 넘는 일기장을 뒤적이며/ 해 저문 저녁/ 침침한 눈으로 돋보기를 끼시고/ 그날도 어제처럼/ 종일 본가를 쓰셨을/ 아버지의 고독한 노년을 생각한다/ 나는 오늘/ 일부러 종일 본가를 해 보며/ 일기장의 빈칸에 이런 글귀를 채워 넣던/ 아버님의 그 말할 수 없이 적적하던 심정을/ 혼자 곰곰이 헤아려 보는 것이다”
살아 생전 섬기기를 게을리 말아야 하는 우리의 부모님, 자녀들에게 경로사상과 효를 바로 심어주고 어른들이 본을 보여 다시는 노인들이 외롭게 죽어 가는 일이 없는 건전한 사회 풍토를 만들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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