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조 ⑵
2004-09-22 (수) 12:00:00
량기백 <전 의회도서관 한국과장>
우리나라에 ‘Genre’문학이 있다면 ‘소리’(창)와 더불어 시조가 아닐까한다. 왜냐면 본래 중국시인 ‘한시’를 우리말과 한문말 섞어 우리글로 써서 승화시켰기 때문이다. 이는 우리말의 과도기이겠다. 마치 자주독립국가를 이룩한 것처럼 순 우리말로 우리만의 독특한 문예(Genre)로 자리잡았으면 한다. 말을 만드는 것이 시인의 사명이란 명제를 받아준다면 이 나라 국어국문학자는 말할 것 없고 우리시인들 가운데 위에 말한 별곡, 가사 그리고 영언을 순 우리말로 옮겨 우리 다 이를 읊어 겨레시 ‘Genre’로 승화하면 얼마나 좋을까. 국한문 섞은 문예이다. ‘Subgenre’(아류)이기에.
시조를 우리나라 정형적 시라 한다. 꼭 순 자기나라말로 쓴 것만 한 나라의 정형시라는데 이렇다면 ‘시조’는 우리 정형시일까. 시조의 역사는 14세기 고려 정몽주(1337-1392)의 ‘단심가’로부터 알려져 있는데 한국학대백과사전 ‘인물’란에는 정몽주의 단심가를 ‘한시’라 했다. 겨레의 말이 중국말과 다르나 글이 없어 한시일 수밖에 없었나 한다. 그러나 일본의 예로 보면 정몽주보다 6백년 전 8세기에 이미 ‘만뇨 수’(Ca.760) 99.95%가 토박이 순일본말이요 오직 0.01%만 한문말이라고 한국새소식(138호, 2/1984)에 났다. 이래서 일본에 ‘고전’이 있어 세상에 ‘일본학’이 있다.
영국 지배 때 인도사람은 그들의 시, 그들 말을 영어 알파벳으로 썼다면 인도시였을 텐데 순 영어로 썼기에 ‘영시’라하고 ‘인도시’라 안 하며, 그리고 소설가 장혁주는 일본말로 소설을 썼기에 그를 ‘일본문단’이라 했다. 어찌 장혁주 뿐이랴. 우리 집사람 외사촌 오빠 김사랑도 일본문단이었다. 한때 이들을 두고 우리문단에서 논란이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시란 이렇게 쓰인 말에 따라 그 호적을 달리한다.
국문쓰기 주장 장본인이었던 김일성이 ‘한시’로 ‘김정일 시’를 썼다. 만일 그가 중국말로 말고 순우리말로 한글로 아들자랑 썼다면 그는 더 위대했을 것 같다. 그의 한시는 뭘 말하는 걸까. 사상과 지성이 가난해서일까. 아니면 공통적 인간의 이중성일까. 아니면 시대적 제한일까. 아니면 한문으로 써야 아들이 더 빛날까. 아니면 이젠 한문 써도 괜찮단 말일까. 연암 박지원, 그는 고생하는 자기 아내에게 국문을 몰라 편지 한 장 못한 것을 안타깝게 말했다. 박지원 작품집(1) 머리말을 쓴 김하명은 이를 그의 ‘시대적 제한성’ 이라 했다. 그런데 시대제한성 없는 이날도 우리는 ‘김정일 시’만 쓴다.
이는 딴 말이나 20세기 전반까지 리듬 있는 ‘Jazz’(Blues)에 이어 후반엔 ‘Rock music’(Rock and Roll)이 유행했고, 이젠 ‘Rap’이라 해 사회를 풍자하는 노래가 있고, 리듬 있어 춤도 추는 ‘Hip Hop’, 그리고 북과 꽹과리 치는 Jamaica 음악 ‘Reggae’도 있다. 이런 ‘Pop music’을 들으면 우리나라 소리, 노래가락, 타령과 탈춤을 연상한다. 흑인가수 Ice Cube는 ‘Black Korean’(한국검둥이)이란 노래를 불러 한때(한국일보, 11/18/1978) 물의를 일으켰다.
신라 때 향언(우리말을 한문으로 쓴 글)으로 시를 썼다는데 이는 ‘시조’였을 거라 했고 그리고 이 향언을 쓰기 시작한 ‘설총’은 본 이름이 아니라 향언 일거라 한 글을 읽은 일이 있다. 그러나 이 다 ‘죽은 자식 나이 세기’로 향언으로 이어온 시의 흔적은 없다. 한시에 몰려서일까 아니면 ‘나’를 저버려서일까. 정몽주 그의 ‘단심가’도 ‘가’(歌) 또는 가요(歌謠)로 한문체 고려시였다. 그러나 이를 우리말로 ‘이 몸이 죽고 죽어 일 백 번 고쳐 죽어...’하고 옮겨 우리 민족시로 우리가 다 익히니 이게 바로 민족시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