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바닷가에서의 행복

2004-09-21 (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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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설자 (워싱턴 여류수필가협회)

오랜만에 가족이 함께 바닷가로 나들이 가는 날이다. 9인승 밴에 가득 짐을 싣고 풍성한 검푸른 나무숲을 스치며 고속도로를 지나 옥수수 밭이 넓게 펼쳐진 시골길을 마냥 달려간다. 미시간에 사는 작은 딸네도 비행기로 머틀 비치를 향해 날아오는 중이다.
가족 캠프장 안에 있는 5 베드룸 콘도에 온 가족이 도착해 짐들을 풀며 바삐 움직인다. 난 손자 손녀들과 백사장에 나가 앉아 장난감 삽으로 모래를 퍼 담으며 모래 위에 그림도 그리며 모래성도 쌓고 모래를 깊게 파 고인 물에 조그마한 발들을 담그며 좋아라 깔깔댄다. 물위에 떠서 올려다보는 파아란 하늘에 떠다니는 뭉게 구름이 어찌나 아름답고 평화로운지 마치 선녀가 되어 구름 위를 나르는 기분이다.
사위들이 구워대는 바비큐, 딸들이 만들어 주는 스파게티 내가 만든 매콤하고 감자 듬뿍 든 닭찜이 집에서 먹을 때와는 전혀 다른 꿀맛이다. 손자 손녀들을 위해 수족관 나들이 갔을 때 아이들이 좋아하는 영화 ‘Finding Nemo’에 출연한 물고기들이 모두 모여있어 꼬리 흔들며 헤엄쳐 다니는 것을 보고 큰 어항 벽을 두들기며 신나서 어쩔 줄 모르는 모습을 비디오로 찍었다.
해가 지고 사방이 어둑어둑해지면 출렁이는 바다 위에 둥근 보름달이 서서히 떠오른다. 달빛 먹은 바다는 뽀얀 안개를 드리운 듯 찰랑찰랑 조용하고, 그윽한 사랑의 세레나데가 마냥 흘러나올 것 같다. 모닥불 대신 여기저기서 불꽃놀이가 펼쳐진다.
손자 손녀들이 할머니라고 부를 때만 난 틀림없는 할머니가 된다. 아직 난 철이 덜 들어(?) 바다에 뛰어들어 파도 타는 재미에도 흠뻑 빠지고 아이들이 풀장에 갈 때 남편과 함께 살짝 골프장으로 달려가기도 했다. 매미소리가 정겹고, 이름도 특이한 마녀(The Witch)란 골프장은 유난히 긴 나무다리와 호수가 많았다. 이름 모를 풀꽃들이 만발해 꽃동산을 이루고 빼곡이 서있는 검푸른 소나무 가지 위에 신기하게도 하얀 학이 무리 지어 앉아 있었다. 집에 펴놓은 병풍에서나 보던 학을 보고 나도 모르게 감탄사가 나온다. 어디서 날아 왔을까. 환상의 날개를 쭈욱 펴 보이며 이 나무 저 나무로 옮겨 다니는 난생 처음 보는 학들. 숲 속에서 별안간 뛰어나와 겁 없이 내 앞에 우뚝 선 엄마 사슴, 아기 사슴의 예쁘고 선한 눈망울들. 두툼한 꼬리를 잽싸게 흔들어 대며 술래잡기하는 다람쥐들, 찢어질 듯한 긴 다리로 여유 있게 서서 물고기를 노리며 물가에 서있는 두루미들. 마치 동물의 세계에 와있기나 한 듯 하나님이 펼쳐놓은 자연의 멋진 풍경화에 도취되어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른다.
살아 숨쉬며 가족들과 함께 즐긴 바닷가에서의 행복을 추억으로 간직하며, 가족이 하나가 되어 삶의 활력소를 만들고 딸들, 사위들, 손자 손녀들과 친숙할 수 있는 기회의 소중함을 맛봤다. 매년 가족 행사로 이어가겠다는 딸들의 제안에 마음이 흐뭇하고 미소가 가득 채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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