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찾아서 끝.
2004-09-10 (금) 12:00:00
이 칼럼이 2002년 12월 달에 시작해서 이제 근 40여회가 지났습니다. 이번이 마지막회로서 이젠 이별이군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망설여지네요. 너무 많이 너무 여러 가지를 생각해야 하는 직업병 때문인 것 같아요.
별 재주도 없으면서 그나마 나름대로 마음 주고 고민하고 정성을 다해 썼기에 환자와 그 가족과 그 외에 억울하게 상처받은 사람들의 증인으로서 무엇인가를 해야겠다는 의무감으로 지금까지 버티어온 것 같습니다.
그들이 들려준 이야기들 그들이 가르쳐준 지혜들 그리고 보여준 신뢰감 그것이 곧 나에게 필요한 약이었습니다. 지난 30년의 경험을 통하여 얻은 지식은 어떤 고통이라도 그 고통 속에서 더 큰 의미와 환희를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꼭 찾지 않아도 상관없지만 말입니다.
오늘은 이별과 당나귀에 대한 얘기를 할까요? 그럼 이별 노래를 들어볼까요? 가장 활발한 스포츠그룹 ‘잘타’그룹의 멤버인 지나가 보내준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
‘또 하루 멀어져 간다/내뿜은 담배 연기처럼/작기만 한 내 기억 속에/무얼 채워 살고 있는지./점점 더 멀어져 간다/머물러 있는 청춘인 줄 알았는데/비워간 내 가슴속엔/ 더 아무 것도 찾을 수 없네./계절은 다시 돌아오는데 떠나간 내 사랑은 어디에/내가 떠나 보낸 것도 아닌데/내가 떠나온 것도 아닌데/조금씩 잊혀져 간다/머물러 있는 사랑인 줄 알았는데/또 하루 멀어져 간다/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
이별은 좋은 거지요. 사랑하는 사람에게만 일어나는 일 아니겠어요? 미워해서 떠날 때 이별이라고 하지 안잖아요. “아픈 게 사는 거지요 뭐”라고 얘기한 어느 아주머니의 말처럼 정말 이별하는 게 사는 거 아닙니까? 위로 같지만 “조금씩 슬프면서 현명해진다고 생각합시다” 혹시 이 노래를 듣는다면 두 번 이상 듣지 마세요.
기운이 빠지고 우울해질 수 있습니다. 슬픔은 느끼는 게 좋지만 슬픔의 강에 익사해서는 안되지요. 다음은 조병화씨의 시 ‘당나귀’.
아이야 그렇게 미워하질 마십시오/그렇게 마구 때리질 마십시오/낙엽이 솔솔 내리는 긴 숲길을/아무런 미움이 없이 나도 같이 갑시다/어쩌다가 멋모르고 태어난 당나귀/나 한 마리/살고 싶은 죄밖엔 없습니다/이렇게 저렇게 살고 있는 죄밖엔 없습니다/외로움이 죄라면 하는 수 없는 죄인이올시다/낙엽이 솔솔 내리는 저문 이 길을/보십시오/나도 함께 소리 없이 끼어 갑시다. -끝-
‘왜 사느냐가 문제’가 아니고 ‘살아야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 지금 우리들은 서로를 필요로 할 때입니다. 우리 주위에 이처럼 외로운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나도 그 중에 하나입니다.
추신) 이민자로 살면서 많은 이민자들을 위로하고 병을 고쳐주며 사니 정말 장하다. 아버지는 철이가 한국 있었으면 더 큰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식들 미국에서 이민 생활하는 거 마음 아파하시고 늙어서 자식 없이 사는 것이 이렇게 쓸쓸할 줄은 미처 몰랐다 하시지. 오늘의 괴로움은 그날에 족한 줄 알고 믿음으로 살아야할 터인데 믿음이 부족하니 하나님께 믿음 주시기 기도할 뿐이다. 이제 힘이 없어 손이 떨려서 이만 쓴다. -엄마-
그동안 격려해 주신 한국에서 노환으로 고생하시는 어머니께도 감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