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세상사는 이야기 다시는 입을 수 없게 된 옷

2004-08-21 (토)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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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꽤 우아한데 비해 내용은 좀 그렇다. 나이가 들면 좀 주책스러워 지는지, 아무렇지도 않게 이런 글이 술술 잘도 나오는데, 다름이 아니라 방귀 때문에 내가 망신당한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것이다.
나의 남편은 어릴 적부터 위장이 별로 안 좋았다고 한다. 그래서 건강하게 지내본 일이 별로 없었던 듯하다. 결혼한 후에도 위장계통의 큰 수술을 세 번이나 하고 결혼 전 맹장수술까지 합치면(이 수술도 복막염으로 확대되어 무지 고생을 했다고 한다) 배를 도합 네 번 가른 셈이다. 이런 위장계통의 수술을 받은 분들의 특징이 방귀를 자주 뀌고(배에 개스가 자주 생기므로) 대변을 자주 하고 그 위에 이 방귀와 대변 냄새가 보통 사람들과 달리 여간 지독한 게 아니다. 그야말로 엽기적이고 살인적이다.
남편이 미안해 할까봐 냄새에 대한 언급은 조심스레 피하지만 시도 때도 없이 방귀를 서슴없이 뀌어댈 때는 한 마디씩 하곤 했다. “여보, 어른들 말씀이 부부 사이일수록 예의를 더 잘 지키라고 하던데요”
그렇게 잘난 척하던 내가 어느 날 방귀쟁이가 될 줄 그 누가 알았으리요. 그러기에 사람은 절대로 큰소리 쳐서는 안 되고 더더구나 자기에게는 그런 일이 절대 일어나지 않을 것처럼 남을 함부로 비난해서도 안 된다. 남의 자식을 함부로 비난하던 어떤 사람이 자기의 자녀가 그대로 고스란히 망가지는 경우도 보았고, 남을 비난했던 그 일을 자기도 어쩔 수 없이 하게 되어 낭패를 보는 경우도 더러 보았는데 내가 바로 그 후자에 속하는 사람이 됐다.
일전에 일간 신문에서 어느 유명한 할리웃 여배우가 의사가 추천한 콩 성분이 든 음식을 먹고 방귀가 자주 나와 곤란해한다는 기사를 읽고는 꼭 내 얘기 같아서 무릎을 쳤다.
사실은 나도 검은콩을 먹으면 머리가 검어지고 머리카락이 덜 빠진다고 해서 검정 콩가루를 열심히 먹고 있는데 그러면서부터 방귀가 자주 나오기 시작해서 여간 곤혹스러운 게 아니다.
내 친구가 방귀로 망신당한 일화 한 토막. 자기 아이가 어릴 때 어느 모임에서 아이를 안고 있었는데 그만 ‘뿅-’ 실례를 해버렸단다. 당황스러운 나머지 아이를 보고 “얘가 왜 방귀를 뀌어” 했더니 아이가 “내가 안 뀌었어”라고 대꾸하는 바람에 들통이 나서 망신을 톡톡히 당했단다.
이 일화도 내가 당한 망신에 비하면 약과다. 그러나 내 얘기를 듣고 나를 흉보는 사람은 그 사람도 언젠가는 반드시 망신당할 것이니 절대로 흉일랑은 보지 말아주시길.
방귀로 곤란한 점이 좀 있기는 했어도 그로 인해 망신을 당한 적은 한 번도 없이 용케 잘 처리해 갔는데 꼬리가 길면 밟히는 법이라고 어느 날 기어이 일이 터지고야 말았다.
그날 한국마켓 샤핑몰에 차를 주차해 놓고 차에서 내리는데 갑자기 예의 그 신호가 온다. 평상시에는 주위에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해결을 하곤 했는데 그 날은 차에서 내려 몇 발자국 옮기다가 어쩐지 아무도 없는 것 같아서 확인을 해보지도 않고 급한 김에 그만 시원스레 실례를 해버렸다.
갑자기 뒤에서 “어머머머-!” 하는 여자의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보니 어떤 젊은 여인이 너무도 놀라고 당황스러웠는지 입을 막고 고개를 숙이고는 내 옆을 앞질러 저만치 달아나는 거다. 나 역시 어찌나 놀라고 부끄럽던지 달아나는 그 여자 뒤통수에다 대고 “아이고- 미안해요”라고 크게 소리쳤다.
하필이면 그날 따라 모두가 예쁘다고 입을 모으던 예쁜 여름옷을 입고 갔는데 그 예쁘고 멋진 여름옷의 스타일이 그만 다 구겨져 버렸다. 그런 멋진 옷을 입은 점잖아 보이는 여인에게서 그런 실례되는 일이 터질 줄을 그 젊은 여인이 상상이나 했겠는가.
그날 샤핑을 못한 건 물론이고 그 길로 바로 집으로 돌아와 옷을 벗어 옷장에 걸어놓고는 더 이상 꺼내 입을 엄두를 못 내고 있다. 행여 그 여인이 그 옷을 기억하고 나를 알아볼까 봐 겁이 나서 도저히 입을 수가 없어서이다.
글쎄, 이런 망신은 한번으로 족할 것 같은데 콩을 안 먹자니 대머리가 될까 겁나고 계속 먹자니 또 망신당할까봐 겁이 나서 나는 요즘 심각한 딜레마에 빠져 있다.

신은실<사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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