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의 온정’ 그룹전을 갖는 도자기 작가 이미례씨가 자신이 만든 생활 도자기들 앞에서 미소짓고 있다.
“꾸밈없이 자연닮은 그릇 추구”
“흙을 만지면 기분이 좋다. 흙은 나에게 기쁨을 선사한다. 흙을 만질 때의 감촉. 무엇이 만들어질 때의 기쁨. 그리고 그것이 구워져서 전혀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올 때 기쁨이 있다. 그러나 또한 흙은 실망을 안겨다주기도 한다. 만들고자 했던 의도와는 달리 전혀 이상한 모양새로 나왔을 때, 금이 가거나 깨져서 나왔을 때 슬픔을 맛보기도 한다. 아마 산다는 것이 이런 게 아닐까 싶다. 기쁨과 슬픔이 교차되는, 어쩌면 흙이 나보고 웃을지도 모르겠다. 자기는 그 자리에 가만히 있는데 그것을 빚어놓고 기쁘다 슬프다 논하는 내게...”
취미로 시작, 첫 작품 입상후 25년 외길
손으로 만든 생활 도자기등 50여점 출품
지난 10일부터 앤드류샤이어 갤러리 도자기전 ‘자연의 온정’에 참가하고 있는 작가 이미례(50)씨가 전시회에 부치는 글이다.
자연을 닮은 그릇, 그리고 숨쉬는 그릇을 만들려고 노력해온 이씨가 갖는 첫 번째 그룹전으로, 손때 묻은 이씨의 애장품이 한 두개 섞여있긴 해도 50여 점의 생활 도자기들이 이번 전시회를 위해 새로 빚어졌다.
이씨의 생활 도자기를 보면 꾸밈이라곤 찾아볼 수 없다. 작업과정도 두 팔로 안아야 될 듯한 넓은 접시조차 간단한 물레 작업 외에는 모두 수작업으로 처리한다. 그림, 문양도 넣어봤지만 결과가 생각과 달라 그냥 물감을 칠하는 것으로 단순하게 작업을 끝내기 때문에 이씨의 작품은 잔잔한 손맛의 장식보다는 자유롭고 대범한 터치, 꾸밈이 없는 형태로 가득하다.
이씨는 자신의 도자기들이 자연그대로를 보는 듯한 느낌이 강한 이유가 아버지를 닮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유난히 산과 자연을 좋아하는 아버지로 인해 그녀가 지닌 어린 시절의 기억은 항상 자연과 더불어 사는 삶이었다는 것.
“대학 시절, 도시 생활에 빠져있는 내 모습을 안타까워한 아버지가 ‘너를 위해 일부러 녹음한 것’이라며 테잎 하나를 건네주셨죠. 나중에 틀어보니 그 속에 산새소리와 물소리를 담겨있었어요”
이화여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이민 와서 워싱턴 동아일보 기자생활을 잠시 했다는 이씨는 매사 끈질긴 면이 없는데 이상하게도 도자기 공예는 25년을 계속해도 새롭기만 하다고 신기해한다.
이씨가 처음 흙을 만진 건 버지니아주의 커뮤니티 센터 도자기 클래스에서다. 두 달쯤 배웠을까. 커뮤니티 공모전에 응시할 기회가 생겨 항아리 같은 형체로 하늘과 땅이 표현된 입체감이 두드러진 도자기를 처음 출품했고 운 좋게 작품이 입상하면서 상금 50달러를 받았다.
‘어, 나도 소질이 있나보지’하는 의아함과 더불어 점점 흙 만지는 재미에 열중해갔고, 큰 접시, 작은 접시, 찻잔, 램프 할 것 없이 생활도자기를 만들어 집안을 채우기 시작했다. 미대 출신은 아니지만 ‘동그라미와 네모’라는 제목의 도자기 작품으로 대한민국 국전에 입상한 경력도 있다.
“생활도자기라는 게 음식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이잖아요? 내가 만든 그릇에 내가 만든 요리를 담을 때를 상상해보세요. 도자기 만드는 거 누구든지 할 수 있어요. 미적 감각 같은 거 필요 없죠. 자기가 만든 그릇이 좋아 보이고 정이 가는 건 당연하잖아요”
사람들을 집으로 초대해 직접 만든 요리로 대접하길 좋아한다는 이씨는 요리를 낼 때도 자신이 만든 서빙 접시에 서브한다. 인원수가 많을 때를 제외하곤 식탁에 놓이는 개인접시와 컵도 이씨의 작품들이다. 이번 전시회만 해도 우연찮게 이씨의 집에 초대받은 앤드류샤이어 갤러리 대표인 큐레이터 수잔 백씨가 곳곳에 자리잡고 있는 그릇을 보고 감탄해 갑작스럽게 LA데뷔전을 치르게 됐다.
전시회를 준비하면서 느낀 게 한가지 있다고 밝히는 이씨는 “너무 애를 많이 쓸수록 결과가 좋지 않다”며 “그냥 흙을 만지는 게 즐겁다는 생각으로, 그리고 내 안의 숨어있는 나를 분출하듯 물감을 툭툭 던졌던 작품을 사람들이 좋아하더라”고 말했다.
자연을 닮으려는 이씨가 정성껏 빚은 도자기 속에 감춰진 은은한 빛깔을 캐내며 전시회를 본다면 보는 사람도 숨어있는 자신을 찾아낼 수 있을 것 같다.
생활도자기전 ‘자연의 온정(Warm-heartedness of Nature)’은 31일까지 앤드류샤이어 갤러리(3850 Wilshire Blvd. #107 LA)에서 열린다. 문의 (213)389-2601.
<하은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