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세상사는 이야기 내 핏줄, 내 아이

2004-08-07 (토)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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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으로서의 방학보다 선생이 되어서 맞는 방학이 훨씬 더 좋은 것 같다. 책도 많이 읽고, 음악도 많이 듣고, 연습도 많이 하고, 친구들도 많이 만나고, 여행도 많이 다니고, 영화도 많이 빌려다 보고, 한국 쇼 프로그램과 드라마도 빌려다 보면서 방학을 보내고 있다.
한국 비디오를 보면서 가장 감동을 받은 프로그램 중 하나는, 일요일 저녁 쇼프로그램의 한 코너였는데, 입양을 기다리는 아기들을 미혼의 여성 연예인이 1~2주 돌보아주는 내용이었다.
특별히 뽑혀서 나온 듯, 아기들은 하나 같이 인형처럼 예뻤다. 그리고 육아의 경험이 전무한 미혼의 여성 스타들이 화장도 안 한 맨 얼굴로 TV에 등장해서, 아이를 돌보며 힘들어하고, 그렇게 하는 과정에서 아이와 정이 드는 것을 보는 것도 매우 감동적이었다.
이 프로그램을 보면서 매번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는데, 버려진 아이의 운명이 안타깝기도 했고, 낯선 땅으로 입양되어 가는 아이가 걱정되기도 했고, 날 키워준 사람이 내 생모라는 사실에 새삼 감사하기도 했고, 그 밖에 나도 알 수 없는 여러 가지 복잡한 감정들이 북받쳐 올랐기 때문이다.
고등학생일 때, 콩쿠르에 이겨서 부상으로 유럽과 미국의 고등학생으로 구성된 청소년 오케스트라와 미시간주 일대를 돌며 순회공연을 한 적이 있었다. 지휘자가 독일인이었고, 동양인은 피아니스트이자 솔리스트인 나 하나였다.
레이크 히긴스 근처의 한 부촌에 도착해서 각자 배정된 호스트 패밀리 집으로 갔을 때, 내가 배정 받은 호스트 패밀리는 매우 여유로워 보이는 백인 노부부였다. 그들은 나를 반갑게 맞으며, 혹시 내가 한국인이냐고 물었다. 그렇다고 했더니 뛸 듯이 기뻐하며, 이웃의 한 가정이 나를 너무 만나고 싶어한다며 전화를 한 통 한 후 나를 데리고 집 근처의 호숫가로 나갔다.
맞은 편에서는 두돌 정도 되어 보이는 동양 여자아이를 안은 백인 부부가 걸어오고 있었다. 그 아이는 한국에서 입양된 지 얼마 안 되었고, 이름은 ‘수잔’이며, 아이를 입양한 젊은 부부는 둘 다 의사인데 아이를 가질 수 없어서 입양을 하였음을 알게 되었다. 아이가 아직 한국에 대한 기억이 어렴풋이 남아있는 상태라, 같은 한국사람을 만나게 해주고 싶은데 그 동네에는 동양 사람이 없어서 내가 온다는 소식을 듣고 기다렸다고 했다.
내가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라서 어색하게 웃음 지으며 서 있는 사이, 아빠가 안고 있던 아이를 내려놓자 놀랍게도 아이는 나를 향해 열심히 뒤뚱뒤뚱 걸어오며 ‘수잔, 수잔…’을 외치면서 손가락으로 날 가리키는 것이었다. 다른 생각을 할 새가 없이 내게 온 아이를 안아 올렸다. 아이는 내 품에 안겨서도 계속 날 가리키며 ‘수잔, 수잔…’이라고 말하는 것을 그치지 않았는데, 아마도 자신과 비슷하게 생긴 사람을 만났기 때문에, 나도 ‘수잔’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아이의 부모는 내게 한국말을 좀 해 달라고 부탁하였다. 나는 ‘수잔, 몇 살이야? 아이, 예쁘다. 밥 많이 먹었어?’ 따위의 말을 건넸지만 아이는 내 말을 하나도 알아듣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이제 밥을 먹을 시간이라며 엄마가 안고 갈 때 내 쪽을 돌아보며 악을 쓰고 울던 기억이 아직 생생하다. 그 어린 나이에도 아이는 낯선 사람들 틈에서 비슷하게 생긴 나를 만나서 뛸 듯이 반가웠나 보다. 너무 좋은 부모님을 만나서 잘 살고 있을 테지만, 그 아이가 앞으로 안고 살아갈 아픔이 느껴지는 듯 해서 오랫동안 잊을 수 없었다.
아이를 갖지 못해서 힘들어하는 부부들이 한국 내에도 꽤 많을 텐데, 유난히 내 핏줄을 선호하는 한인들의 정서상 많은 아이들이 해외로 입양되어 지는 것 같다. 특히 아들의 아들의 아들로 이어지는 호주제 때문에, 그나마 시집가면 남의 집안 호적에 입적되는 딸을 입양하는 것을 선호한다니, 더욱 가슴이 아팠다.
나를 키워주신 부모님이 나의 생부, 생모이고, 한 어머니와 한 아버지를 가진 입장이라는 게 사실은 얼마나 감사해야 할 일인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수 있었다.
그렇지만, 생부, 생모와 자녀가 함께 사는 가정만을 ‘정상적’인 가정으로 인정하고, 나를 키워준 부모가 생부, 생모가 아닐 경우, 이를 비정상적인 가정으로 치부해 버리는 사회적 편견은 하루 빨리 없어져야 할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가정이 어떻게 핏줄로만 이루어질 수 있겠는가. 생판 남이던 남녀가 만나서 가정을 이루듯이, 버려진 아이를 입양하는 것 또한 기쁨이고 운명이며, 정상과 비정상의 잣대로 나누어서는 안 될 일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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