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 메일, 보고 또 보고

2004-07-22 (목)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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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정희 미주본사 논설위원>

전화보다는 무게가 있고 편지보다는 가벼운 것 - 흔히 말하는 E 메일의 특성이다.
E 메일이 등장하면서 ‘편지의 시대’가 막을 내렸다고 섭섭해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얀 종이에 펜으로 정성스럽게 편지를 쓰고, 편지지를 봉투에 넣어 우표를 붙이고 우체국이나 우체통까지 걸어가 편지를 부치는 낭만적인 ‘그리움의 의식’이 사라져 버렸다.
요즘 봉투에 우표 붙여서 우체통에 넣는 우편물은 전화요금, 전기요금, 신용카드 청구서 등 고지서들이 고작. ‘보고 싶다’거나 ‘사랑한다’는 진지한 고백에서부터 일상적 안부 챙기기까지 거의 모든 문자를 매개로 한 통신은 이제 E 메일 아니면 문자 메시지가 이어받았다.
이유는 단 하나, 편리하기 때문이다. 쓰기에 부담이 없고, 마음에 안 들면 한순간에 지웠다 다시 쓸 수 있고, 언제라도 보낼 수 있고, 보낸 즉시 상대방이 받아 볼수 있고 … 편한 점이 한 두가지가 아니다.
하지만 너무 편하기 때문에 가끔 너무 여과 없이 말을 하는 경우가 생기는 것이 문제이다. 전화로 한 말은 그 다음 순간 흔적이 없어지지만 E 메일은 기본적으로 편지여서 기록으로 남는다. 그렇게 남은 기록이 발목을 잡는 경우가 종종 있다.
지난해 미국의 기업 넷 중 하나는 사내 E 메일 규정을 어겼다는 이유로 직원을 해고했다. 직원들의 E 메일 사용에 대해 기업들이 점점 규제를 강화하는 추세인데 이유는 E메일 때문에 골치 아픈 일들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미전국의 840개 기업을 대상으로 한 관련 조사에 의하면 지난해 전체 기업 중 20%가 소송이나 법규 위반여부 조사 등으로 직원들 E 메일을 압수 수색 당했고, 그중 13%는 직원이 보낸 E 메일 내용 때문에 제소되었다.
문제가 되는 내용은 주로 성희롱, 인종 차별, 적대적 작업환경 조성 등. 예를 들어 어느 한가한 오후에 별 생각 없이 동료에게 보낸 E 메일이 몇 달후 성희롱의 증거자료로 채택되는 일이 심심찮게 벌어지고 있다.
E 메일을 어떻게 쓰면 안전할까. 전문가들이 권하는 자가 점검 방법이 있다.
우선 가장 고전적인 방법. E 메일을 써서 보내기 전 이런 질문을 던져 보는 것이다.
“이 내용이 내일 아침 신문 1면에 실려도 껄끄러울 것이 없는가”
둘째, E 메일을 받을 고객이나 동료와 엘리베이터를 같이 탔다는 가정을 해본다. 거기서 큰 소리로 말해도 될 내용인가 - 아니라면 E 메일로 써서 보내도 안 되는 내용이다.
E 메일을 너무 가볍게 여기다가는 큰 코를 다칠 수가 있다. 써서 보내기 전에 보고, 또 보는 신중함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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