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생각하는삶-가슴에 묻은 딸

2004-07-22 (목)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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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혜진 엄마

딸 혜진이가 하늘로 날아가고 없이 다섯 달, 신문에 아버지가 아들의 차에 깔려 죽은 참상이 실려 울었다. 당한 부모는 낫다 싶었다. 앞길이 창창한 그 아이가 헤쳐나가야 했던 죄책감과 분노의 늪을 생각하니 가슴이 콕콕 쑤셔왔다. 공부로 인한 스트레스? 명문대 학생들이 보여주는, 우리를 슬프게 하는 사례들에 내 딸의 이름이 또 나와 마음이 참담해졌다.
지난 2월, 사고사를 자살로 보도한 기사에 안 그래도 슬픈 우리는 더 아프고 힘들었다. 그렇다고 그 아이가 자살을 한 것이 아니니 우린 잠잠히 슬퍼하고, 비극 속에서도 감사하며 위로하고 지냈었다.
고속순찰대의 말 한마디가 오보의 불씨였다. 사고사의 최종판결을 하는 카운티 검시관은 처음부터 사고사로 판정 지은 터였다. 착하고 아름답게 살다가 간 딸이 억울해할 일이었다.
키클럽학교 대표, 테니스팀 주장, 피아노 반주자, 합창단의 솔로이스트, 밸리딕토리언 후보, 명문대 입학, 늘씬한 키, 착한 마음씨 그 또래아이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았었지만, 그것이 다 무슨 소용이었나?
클럽활동의 대표 일을 잘 못해내자 아이들의 시선이 차갑게 변해갔고, 그 후 친한 친구들마저 하나 둘 떠나가는 슬픔과 가슴앓이로 고교 마지막 학기는 홀로서기의 외로움과 처절한 고통의 연속이었다. 전액장학금에 비행기표까지 제공한 대학에서, 아이는 ‘두꺼운 껍질 속’에 들어앉아 버렸고 석 달만에 휴학하고 말았었다.
발렌타인 데이에 혜진이는 로즈힐의 세 뼘 땅에 묻혔다. 혜진아, 네가 일찍 가버려 우리 마음 한없이 아프지만, 너의 삶의 순간마다, 특히 끔찍하게 될 뻔한 사고에서 뼈하나 안 다치게 보호하시고 놀랍게 빨리 회복시키신 그 분을 찬양한다.
‘Amazing Grace’와 ‘Power of Love’를 불렀던 네 마지막 모습을 생각하며 우린 기쁘게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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