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삶과 생각-먼저 온 자와 나중 온 자

2004-07-13 (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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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민교 (의사·리치몬드, VA)

일주에 걸쳐서 216회 미국 장로교 총회가 리치몬드에서 열렸다. 치마저고리를 곱게 차려입은 우리 어린이 레이첼 박이 8,000여 명의 교인으로 콜로세움을 꽉 채운 총회 개최 주일예배를 여는 순서로 시작해서 엄숙하고 장엄한 장로교 전통적인 예배가 진행되었다. 300여 명의 장로가 새벽 7시부터 성찬을 위해 준비를 마치고 관중석에 앉아서 성찬의 만찬을 기다린다. 나는 흥분을 억누르고 일생에 한번 볼까말까한 역사적인 집회에 몰입했다.
우리가 미국에 이민와서 이렇게 한자리에 서서 주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고도 솔직히 두려웠다. 입장하는 교단의 지도자들의 얼굴도 각각이다. 이곳의 백인 일색의 관중을 생각하면 엄청난 변화를 뜻한다. 가난한 사람도 부유한 사람도 핍박받는 사람도 또 세도 있는 사람 모두 나와서 새롭게 변하자 라는 예배부름의 선언문이 우렁차게 울려 퍼진다.
대회장인 앤도루스 여목사는 요한복음 10장 1-15절을 인용하면서 누가 여호와의 문으로 들어올 수 있고 들어올 수 없는지는 오직 주님만이 판단하신다고 했다. 물론 대두되고 있는 동성애자들의 성직안수의 고민이 엿보였다. 그러나 설교의 주제는 예배자는 세례를 통해서 은혜를 받는다고 했다. 그리고 세례그릇의 물을 퍼서 주위에 뿌리기 시작했다. 주님은 조금 조금씩 물 주듯 주시지 아니하고 소나기 비처럼 풍성하게 주신다고 강조한다. 주님은 조금 조금씩 물 주듯 주시지 아니하고 소나기 비처럼 풍성하게 주신다고 강조한다. 목사의 흰 가운에 얼룩이 지기 시작했고 주위에도 반짝이는 물방울이 번져갔다. 나는 시원함을 느꼈다. 아름다운 아프리카의 음악이 신선한 가락으로 울리고 유대인이 경전을 낭랑하게 곡조처럼 읽어 내리고 아랍인이 생소한 낭송이 퍼지며 선교자들과 희망자들이 일어선 채 격려의 박수를 받는다. 나는 저으기 부끄러웠다. 선교를 지원하고 있는 사람들이 기립할 때 나는 고개를 떨궜다.
다음날 새벽 예배에 리치몬드 한인장로교회 찬양대가 초대되었다. 그 예배의 설교자는 한인 2세 김진 목사다. 온갖 노력 끝에 아침 회진과 진료를 밀어놓고 달려간다. 나는 여호와께 경배와 찬양을, 또 우리한인 목사의 설교를 듣고 싶었다. 여느 때와 달리 힘차고 아름다운 찬양이 컨벤션센터를 울리고 있음에 스스로 감격해했다. “내 목자는 사랑의 왕…”
아니나 다를까 김목사는 7세에 이민와서 그 자신의 아픈 시련의 날들을, 네이티브 인디언의 고통을, 철도노동자 중국인의 비애를, 하와이 이민선조의 비애를, 멕시코인의 서러움을, 그리고 누구보다 많은 질곡을 이겨냈던 흑인의 애환을, 그리고 지금 우리들의 이야기를 슬프지 않게 이야기하려 했다. 말씀은 마태복음 20장 1-15절의 먼저 온 자와 나중 온 자에게 똑같이 주시는 풍성한 은혜이다. 나는 이때도 부끄럽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실로 이다지도 늦게 와서 이곳에 벌써 와서 일구던 사람들과 똑같은 은혜를 받다니. 마음속 깊은 곳에서 반성의 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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