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서재필 대상 수상자 현봉학 박사, 한국전쟁 피난민과 극적해후

2004-06-15 (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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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당시 흥남 부두 피난민 철수 작전에 큰공을 세워 ‘한국의 모세’라는 별명까지 얻었던 현봉학(82 토마스 제퍼슨 의대 명예 교수)박사가 당시 피난민 중의 한 명과 54년만에 해후하는 감격을 맛보았다.

현 박사는 당시 흥남 철수 작전에 대한 뒤 이야기를 오는 17일(목) 뉴욕의 코리아 소사이어티(회장 도널드 그레그 전 한국대사) 초청 강연회에서 털어놓을 예정이다. 서재필 기념 재단에서는 이 같은 현 박사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올해 서재필 대상 수상자로 현봉학 박사를 선정했다.

노스 필라에 있는 서재필 기념 재단(회장 정홍택)은 지난 14일 서재필 병원 회의실에서 현봉학 박사와 피난민 중의 한 명이었던 정장준(67 몽고메리 카운티 도일레스 타운 거주)씨의 극적인 해후를 주선했다. 현 박사는 정 씨에게 그 동안 어떻게 지냈느냐고 물었고 정 씨는 당시 피난할 수 있었던 덕분에 이렇게 미국에서 정착해 잘 살고 있다고 화답했다.


정 씨는 현 박사가 흥남 부두 피난민 철수 작전의 주역이라는 사실을 2년까지 몰랐다. 정 씨는 우연히 현봉학 박사가 ‘한국의 모세’라고 불리게 된 이야기를 전해 듣고 현 박사가 근무 중이던 필라 다운타운의 제퍼슨 병원으로 전화를 했다. 그러나 현 박사는 당시의 공을 전혀 내세우지 않고 같은 고향 분이니 나중에 한 번 만납시다라고 말했다.

그래서 두 사람은 만날 기회를 갖지 못하다가 서재필 기념 재단 이사회에서 올해 서재필 대상 수상자로 현 박사를 선정하면서 두 사람의 만남을 주선했다. 서재필 재단은 오는 9월 18일 아담스 마크 호텔에서 시상식을 갖는다.

정장준 씨는 함흥 출신으로 1950년 12월 중공군이 압록강을 넘어 오자 흥남으로 홀로 피신했다. 당시 흥남에는 미 10군단 사령부가 설치돼 있었으며 현봉학 박사가 사령관 민사 고문관으로서 통역과 피난민 구조 작업을 도와주고 있었다.

정 씨는 피난민 철수가 마무리된 1950년 12월 24일 오후 4시께 까지 부모 등 가족을 기다리다 마지막 배를 타고 탈출해 거제도에 수용됐다가 1973년 미국으로 이민 왔다. 당시 13살이었던 정 씨는 피난민을 실은 LST 수송선에서 바라 본 흥남 부두 폭발 장면이 아직도 생생하다고 말했다.


<홍진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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