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의 싱글 라이프
2004-06-12 (토) 12:00:00
작년 연말 재혼식을 한 수필가 L 선생님을 만났다. 선생님은 연세 70에 재혼을 한 것이 다. 워낙 고우셔서 수절하고 계신 동안 프로포즈도 많이 받았지만, 연세가 있으시니 그냥 홀로 사실 줄 알았다. 신랑(?)은 소문과는 달리 74세의 같은 교회 집사님이셨다. 소문은 요즘 유행하는 연하의 신랑이라고 했었는데 아니었다.
당연히 주례는 두 분이 함께 출석하는 교회의 원로목사님이 하셨다. 둘 다 짝을 사별한 완벽한 싱글이어서, 재혼식의 주례는 서시지 않는다는 목사님도 흔쾌히 허락하신 것이라고 한다. 그 재혼식에 너무 많은 사람이 몰려 주차장이 없어 되돌아간 이들이 많았는데 나도 그 중의 하나였다. 그래서 거의 5개월만에 그런 사람을 불러 뒤풀이를 하시는 모임이었다.
멕시코에서 농장을 하시는 K 시조시인 내외와 늘 아침에 시를 보내주는 K 시인 그리고 내가 참석을 하였다. 당연히 화제는 재혼이었다. 쑥스러운 새신랑은 안나오시고 재혼식의 사진만 가져오셨다.
그런데 재혼을 한 그 부부가 살림을 따로 합치지 않고 예전처럼 노인아파트에서 각기 산다는 거였다. 식사만 이 선생님 댁에서 하고 잠은 각자 자기의 아파트로 돌아가 주무신다 하여 모두들 웃었다. 파격적이어서.
이유인즉 혼자 살 땐 월 200불만 내도 되는 노인아파트가 둘이 살면 값이 두 배로 되어 약 400불을 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같은 돈 내고 두 채의 아파트를 갖는 게 나아서 합치지 않고 둘이 딴 살림을 하는 것이라나? 처음엔 실리적인 이유에서였는데, 살다보니 너무 편리하고 좋다며 항상 연애하는 기분이라고 하신다. 권하고 싶은 방법이라나? 재혼을 하라는 소리인지... 사별을 하라는 소리인지... 웃었다. 듣고 보니 괜찮을 것 같았다. 후에 그런 ‘행운’이 온다면 그러하리라 생각해 보았다 잠시.
남자 분이 우스개 소릴 잘하셔서 교회의 노인 골프모임에 갈 때마다 늘 까르르 웃다가 호감을 갖게 되었노라고.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그저 남자는 유머가 있어야 한다나? 얼마 전 신문에서 신세대 신부들도 신랑의 유머를 결혼의 첫째 조건으로 친다고 하는 기사와 일맥상통하는 것이 아닌가? 나이 먹어도 여잔 여자인 모양이었다. 감정은 소녀적 감정 그대로이신 듯 하였다.
에구~ 내 팔자야...나는 내가 우스개 소리를 해야 그저 씩 웃을 뿐으로 유머감각은 ‘꽝’인 남자와 살고 있다 여태껏. 아무튼 선생님의 재혼이 추해 보이지 않고 신선했다.
그 다음날은 3년 전에 홀로 되신 소설가 J 선생님을 만났다. 연세가 60이 넘으신 선생님은 부군이 남겨두고 가신 회사를 정열적으로 운영하고 계신다. 오히려 사세가 확장되고 인도네시아에도 큰 공장을 세우셨다고 하신다. 더 예뻐지시고 더 멋쟁이가 되셨다. 얼마 전 출판 기념회 때 접수 봐드린 턱을 쓰시는 거였다.
내 단짝 소설가 P와 나갔다. 근사한 일식을 쏘시면서, 우리의 질문에 대해 말씀하신다. 우리의 궁금증은 왜 재혼을 안 하시냐?는 거였다. 그랬더니 이런 희한한 대답을 하시더라.
“하루가 좋으려면 골프를 치고, 한 달이 좋으려면 결혼을 하고, 6개월이 좋으려면 이혼을 하라”는 말이 있다나? 그러니 왜 재혼을 하겠냐고 하신다. 나는 처음 들어보는 소리로 아마도 선생님이 지어내신 말 같았다.
그러면서 남자친구가 설사 있다하여도 그 족쇄를 다시 찰 필요가 있냐는 거였다. 그저 보고싶을 때 보는 쿨한 관계로 연애감정으로 애틋하게 사시겠다고 하신다. 가끔 남편의 묘지에 가서 큰소리도 치고 넋두리도 하며 자유롭게 사시겠다는 선생님.
70대의 수필가 L 선생님이나 60대의 소설가 J 선생님이 매우 부러웠다. 40대인 나도 얼마든지 동경할 생각이 아닌가 싶었다, 진짜로 부러웠으니 말이다.
두 번의 모임에 다녀온 후 남편에게 말했다. 너무 근사하지 않느냐고 너무 동경한다고. 그랬더니 글쓰는 이들 모임에 당분간 나가지 말라고 금족령 떨어졌다. 나는 집에 갇힌 신세 되었다. 말 한마디 잘못하여.
이제 보니 같이 산다고 해서 다 좋은 건 아니다. ‘수감생활’ 중에 할말은 아니나 따로 떨어져 살아도 영혼이 교감되는 생활, 이것이 정말 동반하는 삶이 아닐까한다. 남편이 이 글 보면 금족령 연장될라.
이정아<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