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2004-06-05 (토) 12:00:00
지난 수요일, 예배가 끝난 후 주위를 둘러보던 내 눈에 깜짝 놀랄만한 장면이 들어왔다. 여러 해 동안 찬양팀에서 함께 활동하며 알고 지내오던 K가 호수처럼 파란 눈이 빨갛게 된 채로 눈물을 주룩주룩 흘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누구나 부러워하는 늘씬한 팔등신 몸매, 금발에 파란 눈을 가진 뛰어난 미모에 비해 수수한 성격, 패션모델 겸 에이전시의 직함을 갖고 있는 소위 잘 나가는 전문직 여성 K가 남의 시선을 개의치 않고 눈물을 보이고 있다는 것 자체가 내게는 충격이었다.
얼른 다가가 이유를 묻는 내게 울먹이며 들려주는 그녀의 대답이 내 가슴을 철렁 내려앉게 했다. 최근에 그녀는 석 달 남짓 간격으로 교통사고를 두 번 겪으면서 재정적으로 손실을 입은 것은 물론이거니와 몸과 마음에도 무리가 왔다.
그녀의 직업상 완쾌되지 않은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쉴새 없이 라스베가스로 뉴욕으로 출장을 다녀야 했고, 양·한방을 오가며 치료를 받는데도 목의 통증과 두통에는 별 차도가 없으며, 통증을 견디며 미소짓는 얼굴로 무대 위에서 워킹을 해야만 했단다.
두 번째 교통사고 소식을 들었던 날 밤에, 난생 처음 그녀에게 안부와 위로의 말로 몇 줄 채운 이메일 한 통 보내놓고 내 할 일 다한 것마냥 여기고 있었던 나의 이기심, 무관심이 진정으로 미안했다.
그 몇 줄의 글이 큰 위로가 되었다고 말해서 나를 더 부끄럽게 했다. 그동안 간간이 흘리던 그녀의 이야기를 무심히 들었던 일들이 생각나서 쓰디쓴 물을 뒤집어 쓴 것마냥 씁쓸한 심정이 되었다.
내면보다는 외모지상주의, 경쟁과 긴장의 끈을 잠시도 늦출 수 없는 자신의 직업에 오래 전부터 넌더리를 내고 있었지만, 막상 그만 두면 무슨 일을 새롭게 시작할 수 있을지 두려움이 앞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고민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오래 전 지금의 자신과 같은 불혹을 갓 넘긴 나이에 어머니가 사고로 돌아가신 것과, 얼마 전에 잇달아 자신에게 일어난 사고들이 연결되어 자신의 삶도 그렇게 마감되는 것은 아닐까 하고 울적한 마음이 들곤 한다는 것이다. 연로하신 아버지마저 돌아가신다면 세상에 혼자 남게 될 것이 두렵고 슬퍼 내내 마음이 무겁고 외롭다는 것이다.
좋은 크리스찬 남성과 단란한 가정을 꾸리는 것이 바람이지만 데이트를 신청해 오는 남자들은 그런 그녀의 소박한 꿈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뿐이니 참으로 답답하다는 것이다.
더 깊은 신앙으로 곤고한 지금의 상태를 이겨나가고 싶지만 뜻대로 되지 않고 그런 자신에게 화가 나고 불평하게 된다는 것이다.
함께 듣고 있던 A도 밝히기가 결코 쉽지 않았을 자신의 속사정을 털어놓아 나를 또 한번 뜨끔하게 만들었다. 나 또한 마이너리티로서 부족함을 지닌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단속하려는 데만 급급했던 사실을 반성했다.
그 날 우리가 함께 나눈 대화와 기도는 지난 여러 해 동안 서로가 주고받았던 어떤 말이나 행위보다 진실했고 유리알만큼이나 투명했으며, ‘이해’와 ‘관심’이라는 관계로 한 발짝 더 다가설 수 있게 해주었다.
그동안 우리가 수없이 반복해왔던, “안녕, 요즘 어떻게 지내니?” “잘 지내, 좋아, 너는?” “응, 나도 좋아.” 이런 식의 수박 겉핥기식 인간관계가 얼마나 무의미한지를 점검해 볼 참으로 고마운 계기가 되었다.
진심으로 상대를 이해하려는 마음과 노력 없는 겉치레 관심은 우리를 더 우울하게, 더 외롭게 만든다는 것을, 그런 관계의 끝은 모래성 쌓기만큼이나 허무하게 끝나 버릴 수도 있음을 생각해볼 일이다.
누구에게나 하루에 30분 이상의 자투리 시간은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자투리 시간 동안만이라도 자주 불러주지 못했던 이의 이름을 불러주며 ‘관심’과 ‘이해’의 단추를 끼우는 일은 우리 각자의 몫이요, 아름다운 책임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