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만철 칼럼 의사와 환자
2004-05-08 (토) 12:00:00
다음은 한국 비디오 영화 ‘피아노’에 나오는 대사들이다.
<장면1> 깡패 환자가 속이 너무 아파서 진찰을 받으러 왔다.
원장: “술 묵어서 그렇다. 아무 이상 없다”
환자: “이상 있다. 내가 아픈데 왜 당신이 안 아프다카노?”
원장: “아이고 미안타, 그래 어디가 우째 아프단 말이고?”
환자: “어떤 여자 눈만 생각하믄 심장이 오그라들고 속이 상한다”
원장: “그건 의사한테 물어볼 게 아니라 카이”
환자: “그럼 누구한테 물어보란 말이고?”
원장: “마음 밭에 씨 뿌린 사람한테 물어봐야지. 그 꽃 그만 피워쁘라. 물주고, 그늘 주고, 꽃필 때까지 기다리믄 낫는다”
환자: “의사가 아니고 꽃집 주인이네. 에이, 돌팔아!”
<내 사무실 장면 1> 50대 초반의 아주머니가 사무실에 왔다.
의사: “지금 먹는 약이 무엇입니까? (환자가 당뇨병 약, 고혈압 약, 심장 약, 관절염 약, 우울증 약 5가지를 보여준다.) 아니, 치료를 다 받고 있는데 왜 오셨죠?”
환자: “허리에 통증이 심합니다”
의사: “아니, 이 통증은 그쪽 신경과 선생님한테 치료해 달라고 해야지, 그리고 우울증은 나한테 얘기해야지”
환자: “제가 아픈 곳을 5군데나 얘기해, 너무 미안해서 더 이상 아프다는 말을 그 선생님한테는 못하겠더라고요”
의사 : “허허… 아무리 그래도 정신과 의사가 허리 디스크병을 치료할 수는 없잖아요”
<내 사무실 장면 2>
환자: “불안증은 그때 작년에 생긴 것 같아요. 그냥 정기검진을 받으러 갔는데 의사 선생님께서 ‘수술해야겠네. 암인 것 같애’라고 느닷없이 얘기했습니다. 그래서 전혀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나는 갑자기 가슴이 덜컥 내려앉고 정신이 아찔하고 그렇게 불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부터 이 불안증이 생긴 것 같아요”
의사: “아니 그 의사가 참 성격이 좋고 자상한 사람으로 알고 있는데”
환자: “아니에요. 자주 덤벙대는 때가 있다고요”
의사: “아니 그럼 그 의사한테 고쳐 달라고 얘기를 하지”
환자: “어떻게 그런 얘기를 해요”
<내 사무실 장면 3> 아침에 활기차게 나온 의사도 하루 일과가 끝날 쯤이면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고 정신이 좀 없는 것 같은 모습을 하게 된다. 지치고 피곤한 상태로 있을 때 7시나 되어서 늦게 마지막 환자가 왔다.
“호호호, 선생님이 꼭 환자같이 보여요. 오늘은 골치 아픈 제 문제는 이야기 안할래요”
사람은 아플 때 불안해지고 약해지고 참을성 없어지고 쉽게 감정이 상하게 된다.
의사는 환자를 보살피지만 환자가 의사를 참고 봐 주는 경우가 더 많지 않을까?
시간 안 지키기. 퉁명스러움. 목에 힘 주기. 설명 안 해줌. 고통스러운데 자기들끼리 웃고 농담하기. 감정 없이 의학적 소견만 기계적으로 말하기.
‘예외는 있겠지만 나는 이러지 않는다’고 한다면... 오랜만에 웃는 분들 제법 계실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