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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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땅 없는 온건파

2004-05-01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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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공화당에서 온건파가 설 자리는 별로 없다. 알렌 스펙터 연방 상원의원이 공화당 예선에서 보수파인 팻 투미 연방 하원의원에게 가까스로 이긴 것은 온건파의 승리로 볼 수 없다.
그는 이번에 보수파 동료 의원인 릭 샌토럼 연방 상원의원과 부시 대통령의 전폭적인 지지를 업고서야 간신히 당선됐다. 그는 자기지지 기반인 필라델피아 지역을 제외하고는 펜실베니아 각지에서 패배했다. 한 때 존 하인즈 계열의 온건파가 주류를 이루던 공화당은 샌토럼 계열의 보수파가 장악하고 있다.
74세인 스펙터의 승리는 앞으로의 대세가 아니라 온건파의 마지막 승리라 봐야 한다. 온건파 공화당원을 몰아내기 위해 만들어진 ‘성장을 위한 클럽’은 이번에 투미 지원 기금으로 200만 달러를 모음으로써 실력을 과시했다. 이 클럽 회장인 스티븐 무어는 온건파를 보수파로 대체하거나 보수파에게 경종을 울리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그는 예선 전 “온건파인 채피나 스노우, 보이노비치에게 이미 경고를 보냈다”고 말했다.
스펙터를 당선시키기 위해 백악관이 전력을 기울인 사실을 공화당이 얼마나 보수적으로 변했는가를 보여준다. 앞으로 공화당 후보로 나오는 사람은 오른 쪽으로 기울어질 수밖에 없다. 뉴욕 주에서만 온건파 공화당의 대표격이던 에이모 하우턴과 잭 퀸 연방 하원의원은 은퇴를 선언했다. 차기 공화당 후보 중에는 이런 인물들이 없다.
앞으로 공화당 후보들은 예선에서는 보수파 흉내를 내다가 본선에서는 다시 원 위치로 돌아와야 할지 모른다. 스펙터는 예선에서 이기자마자 자신의 독립성을 유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색깔이 뚜렷한 것은 유권자들이 선택을 분명하게 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좋다. 그러나 이는 미국의 분열을 심화시키고 중도파의 설 자리를 뺏는다는 점에서 바람직하지 않다. 공화당 보수파의 목소리가 커지면 커질수록 중도파들은 버몬트의 짐 제포즈처럼 탈당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E.J. 디온/워싱턴 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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