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말의 혼돈

2004-04-29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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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어를 배우는 사람들에게 말의 혼돈으로 인해 재미있는 일이 가끔 생긴다. 평화봉사단원으로서 한국말을 처음으로 배울 때 있었던 일이다. 나를 포함해서 대부분의 미국사람들에게 ‘ㅊ’ 소리와 ‘ㅈ’ 소리는 구별하기 매우 어려운 발음이다.
한국말을 가르쳤던 선생의 이름은 미스터 최였는데, 그는 우리가 자기 이름을 정확히 발음하지 못하면 죽는다며 그의 이름을 정확하게 발음할 것을 강조하였다. 그의 협박에 어리둥절해 하는 우리들에게 미스터 최는 이렇게 설명하였다. 한 평화봉사단원이 치약이 필요하였다. 그는 영한 사전에서 한국말로 ‘치약’이라는 단어를 찾아 외운 후 가게로 갔다. 가게 주인에게 치약을 달라고 하였다. 미국인 청년은 상점 주인이 건네 준 포장지에 쥐가 그려져 있는 것을 보고 참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치약을 샀다.
집에 돌아와서 포장지를 열어 보고는 자기가 생각하고 있던 치약과 너무 달라 하숙집 주인에게 이것으로 어떻게 이를 닦느냐고 물었다. 하숙집 아주머니는 놀라서 ‘쥐약’을 청년에게서 빼앗아 그 자리에서 버렸다. 하마터면 죽을 뻔하였던 그 청년은 그 후 ‘치약’과 ‘쥐약’을 정확히 발음하게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가 정말인지 모르지만 30년이 지난 지금 미스터 최의 한국말 클래스에서 배운 것은 이 부분만이 기억에 남아있다.
아이들이 초등학교 다닐 때이다. 독일 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 차를 세내어 체코로 가던 길에 독일의 작은 음식점에 들렀을 때의 일이다. 작은 아들이 화장실을 사용하겠다고 하였다. 아들은 화장실 문 앞에서 주저하였다. 화장실 문에 쓰여 있는 독일 말을 몰라 어느 문으로 들어가야 할지 당황해 하고 있었다. 남자 화장실이 어느 쪽이냐고 묻는 아들에게 나는 즉각 답하지 않고, 아들이 스스로 생각할 기회를 주기 위하여 문에 붙어있는 단어를 가리키며 추측하여 보라고 하였다.
그는 화장실 문에 쓰여진 ‘DAMEN’과 ‘HERREN’이라는 글자를 주의 깊게 살폈다. 잠시 후 아들은 ‘DAMEN’에 있는 ‘men’ 단어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da men’ 하고 소리내어 읽으면서 ‘the men’이라고 설명하였다. 아들은 자신의 풀이 능력에 만족해하며 다음에는 ‘HERREN’이라는 단어를 풀이하기 시작하였다. ‘Herren’이라는 말에 ‘her’라는 글자가 있으니까 ‘her room’ 하면서 여자 화장실이라고 자신 있게 말하였다.
자신의 해석에 흐뭇해하며 ‘DAMEN’이라고 써 있는 문으로 들어가려는 아들을 나는 제지하며, 화장실을 사용하려고 우리 쪽으로 걸어오고 있는 여자가 어느 쪽 문으로 들어가는지 보라고 제의하였다. 아들은 급하다면서도 호기심이 발동하였는지 나의 제의에 동의하였다. 그 여자가 ‘DAMEN’이라고 표시된 화장실로 들어갔다. 아들은 혼돈한 표정을 지으면서 서둘러 ‘HERREN’이 남자용이라는 것을 알고 다른 쪽 문으로 들어갔다.
지난주 기도 모임에서이다. 모임을 인도하시던 목사님이 나의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를 하셨다. 한국말로 열렬하게 기도하셨다. 기도가 끝난 후 나는 아내에게 목사님의 기도의 요점을 물었다. ‘볼드니스’를 위해 기도하였다고 아내가 말했다. 나의 대머리(baldness)를 위하여 기도하다니. 나는 나의 귀를 의심하며, 날마다 대머리가 되어가고 있는 나의 뒤통수를 만지며 다시 아내에게 되물었다.
“목사님이 무엇을 위해 기도하셨나요?”
‘볼드니스’(boldness)를 위해 기도하였다고 아내가 말하였다. 이번에는 ‘담대함’이라고 들었다.
집으로 오는 길에 나는 아내에게 요즈음 급속히 대머리가 되고 있는 것 같는데, 아마 교인들이 나의 ‘baldness’를 위하여 기도를 많이 하나보다고 하였다. 이 단어들이 하늘나라에 도달하였을 때 하나님께서 나의 ‘baldness’와 ‘boldness’를 혼돈하시지 않기를 바라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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