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용천 참사 어린이들 도와야 하나

2004-04-29 (목)
크게 작게
‘한 핏줄 살리기’ 보수·진보 따로 없다

수천의 사상자와 수천 억 원의 재산 피해를 입은 북한 용천 일대는 아비지옥에 다름 아니다. 폭발 열 폭풍과 파편으로 온몸이 찢기고 실명위기에 처한 어린이들의 울부짖음은 아비규환 그 자체다.

폐쇄성 논쟁보다 ‘생명’이 우선
탈북자 돕기 단체들 동포애 발휘할 때
한인사회 이념 갈등 대승적 승화 계기로


수업이 파하고 집으로 신나는 발걸음을 하던 초등학생들이 참변을 당했다. 화상으로 얼굴이 검게 그을린 어린이, 파편이 얼굴과 온몸에 박혀 얼기설기 대충 꿰맨 어린이, 눈을 붕대로 감은 어린이, 중상자 가운데 60%가 어린이다. 이들이 실명 위기에 처해 있다. 약이 부족해 고통에 몸부림치는 아이들 곁에서 속수무책으로 바라만 보고 있어야 하는 어머니들. 아이를 달래다 지쳐 오열한다. 눈뜨고 볼 수 없고 말로 형언하기 어려운 지경이다.
평소 대북 화해를 주창해 온 한국정부가 북한 피해자들에 발빠른 지원을 한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그러나 정부의 대북 정책에 부정적인 한국의 보수단체들이 지원에 공감했고, 과거 대북 식량 지원을 군량미 전용 가능성 빌미로 제동을 걸었던 한나라당이 형제애를 보인 것은 신선하다.
세계의 비정부기구와 단체들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세계식량계획, 세계보건기구, 유엔아동기금, 국제적십자사연맹, 어드벤티스트, 카리타스, 컨선 월드와이드, 프르미에 위르장스, 아그로액션 등이 현금은 물론, 쌀, 콩, 식용유, 항생제, 수액 세트, 주사기, 모포, 조리기구, 식수 컨테이너, 정수용 알약, 텐트 등을 제공했다.
정부 차원의 지원도 잇따랐다. 북한과 친한 중국과 러시아는 그렇다 치자. 북한과 미온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유럽연합, 아일랜드, 독일, 호주, 영국 등도 이번 참사를 북한의 폐쇄성과 연결해 정치적으로 해석하지 않고 피해 어린이들의 빠른 치유만을 기원한다며 많게는 수백만 달러를 지원키로 했다.
일본인 납치문제로 북한과 감정의 골이 깊어진 일본도 인도주의 물결에 합류했다. 북한을 ‘악의 축’으로 몰아세웠던 부시 행정부도 1차 지원에 이어 추가 지원을 언급할 정도다. 북한 어린이를 돕는 일은 이제 북한 정권에 대한 호 불호와 무관하다는 것이다.
남들도 경쟁하듯 구호의 손길을 보내는데, 아무리 분단체제로 갈라져 살아왔다고 해도 한 핏줄인 우리가 외면할 수는 없다. 정치도 이념도 아무 것도 모르는 천진무구한 어린이들이 눈을 잃고 얼굴이 찢겨나갔다. 저 멀리 아프리카 어린이들이 이 지경이 되어도 측은지심이 발동하는 게 인지상정이다.
북한의 폐쇄성을 비판하는 것은 한숨 돌리고 해도 늦지 않다. 이 문제는 수십년 간 입이 아프도록 다뤄온 이슈다. 지금 피지도 못한 인명이 경각에 달려 있다. 한 명이라도 더 살려내려면 촌각을 다투는 구호가 절실하다. 중국 접경지역에서 가까워 국경을 넘나드는 사람들이 많아 비교적 빨리 외부세계에 알려졌다는 점을 불행 중 다행으로 여겨야 할 것이다.
재중국한인회, 재일총련, 필리핀한인회, 뉴질랜드한인회 등도 모금운동을 펼치고 있다. 한국국적을 갖고 있는 재일동포의 모임인 민단도 처음으로 팔을 걷었다. 미주한인회총연합회, 캘리포니아 북가주이북인연합회도 대열에 끼었다. 인정 많은 LA한인들이 가만히 있을 리 없다. 한인회, 평통, 상공회의소 등이 이념을 제쳐두고 일단 고통에 몸부림치는 동포를 돕는 게 도리라며 뛰어들었다.
북한에 기족이나 친척이 없어도 따지고 보면 같은 핏줄이다. 내 아들 딸, 내 손자 손녀, 헤어진 내 형제 자매의 아들 딸, 손자 손녀가 죽었는데도 이념이 어떻고 김정일이 어떻고 할 것인가. 그러고도 북한 인권에 대해 말한다면 자가당착이다. 이 아이들이 커서 김정일의 하수인이 되고 남한에 총부리를 겨눌 것이 염려돼, 병상에 누워 있는 모습에도 냉랭한 시선을 보낸다면 차가운 이념 논쟁을 탐닉하는 것이다.
공산당이 몸서리쳐지게 미워도 북녘 어린이들을 죽게 내버려둘 순 없다. 교회, 성당, 사찰에 나가 이웃에 대한 사랑과 자비를 다짐하면서 참상을 못 본척하고서야, 무슨 염치로 신앙인을 자처할 수 있겠는가. 북한 어린이들이 독재정권 아래서 산다고 해서 도와줄 만한 가치가 없는 존재로 치부할 수 없다.
주체사상에 철두철미한 북한 스스로 해결할 일이라며, 자업자득이라며 나 몰라라 할 수 없다. 이웃 집 뒤뜰에 불이 붙었고 그 집 수도관이 낡아 물이 새고 그나마 호스도 짧아 진화가 어려운 지경인데도 “당신 집 문제이니 스스로 해결하시오”라고 할 것인가. 평소 맘에 들지 않는 이웃이라도 일단 불을 끄는 데 힘을 합해야 한다.
한인사회는 탈북자에 유난히 관심을 기울이고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탈북자도 동포이고 참사 피해어린이도 동포다. 탈북자의 인권이 중요하듯 참사 피해 어린이들의 생존권도 소중하다. 탈북자 돕기에는 두 팔을 걷어붙이고 어린이 돕기에는 팔짱만 낀다면 앞뒤가 맞지 않는다.
사선을 넘어 온 탈북자를 구제하기보다 북한 체제 비판용으로 활용하려는 게 아니냐는 의구심을 낳을 뿐이다. 그 동안 탈북자 지원단체나 관계자들이 다시 한번 동포 돕기에 나서길 바란다. 탈북자는 구사일생으로 자유를 찾았지만 북녘 어린이들은 통제사회에서 신음하고 있지 않은가.
북한 어린이 돕기 캠페인을 ‘북한에 뇌물 바치는 정신병적인 상황’으로 규정한 시각도 있다. 모금함에 동전을 넣는 어린이, 장을 보고 나오다 측은한 마음에 1달러 지폐를 넣는 주부, 빠듯한 살림에도 성금을 내는 샐러리맨, 김정일이 밉지만 동포까지 미워할 수는 없다며 용돈을 터는 실향민 할머니. 이러한 모습이 ‘정신병적인 상황’이란다.
경직된 이념의 잣대로만 세상사를 재단하고 눈곱만큼의 인정도 보이지 않는 게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고통 속에서 신음하는 동포 어린이들을 돕는 ‘비정상적인 상황’이 되레 더불어 살만한 세상일 것이다. 진리는 불변이지만 이념은 시대의 산물이다. 이민생활을 하는 우리가 ‘이념의 노예’가 되는 것은 너무도 비생산적이고 시대착오적이다.
북한 돕기는 한인사회 진보와 보수가 화합할 수 있는 계기이고 자녀들에게 동포애를 느끼게 할 수 있는 기회다. 이웃돕기는 받는 사람이나 주는 사람 모두를 기쁘게 한다는 평범한 진리를 새삼 떠올렸으면 한다.

박 봉 현 편집위원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