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과거에 얽매인 대북 정책

2004-04-27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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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트 의식에 가득 찬 기성세대에 대한 젊은 유권자들의 누적된 반감이 한국 국회를 재편했고 극적인 정치변화의 가능성을 열었다. 한달 전 보수 정치인들이 노무현 대통령 탄핵안을 밀어 붙였다. 경미한 선거법 위반을 이유로 들었지만 실상 속내는 노 대통령의 정치 및 경제 개혁을 둘러싼 실수들을 빌미로 판세를 뒤집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 같은 시도는 엄청난 역풍을 초래했다. 총선을 앞두고 탄핵안을 가결한 정치인들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다. 그리고 열린우리당은 16대 국회에서 49석에 불과하던 소수당에서 17대 국회에서는 152석을 차지하는 거대여당으로 변모했다. 아울러 민주노동당이 원내에 입성했다. 여성의원 39명이 탄생했고 129명이 30대와 40대의 젊은층이다. 민주화를 향한 한국의 열정은 매우 강렬했다. 민주화 이후에도 상명하복의 위계질서에 익숙한 고위 공직자와 정치인들의 고압적인 자세가 지속돼 왔다. 부모들은 현 질서를 유지하길 원했지만 젊은이들은 달랐다.
젊은이들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햇볕정책을 지지했다. 이들은 북한의 전체주의적 체제에 대한 기성세대의 ‘공포체험기’를 귀담아 듣지 않았다. 이들은 또 미군은 해방군이라기보다 점령군에 지나지 않는다. 중국이 신선한 감정을 갖고 있으며, 외국어로 영어보다 중국어가 더 인기가 있을 정도다. 이들이 노 대통령을 지지하는 것은 국제문제에 있어서 미국에 대해 보다 독립적인 목소리를 내려한다는 데 있다.
그러나 부시 행정부는 자유와 민주주의를 외치고 있지만 실상 자유롭고 민주적인 한국사회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부시 주변의 신보수주의자들은 북한의 핵이 위험한 문제라고 하면서도 협상에는 미적지근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핵 프로그램 동결을 전제로 경제지원 카드가 제시됐음에도 불구하고 부시 행정부는 2년 동안 대안을 제시하지 않고 반대만 하고 있다.
6자 회담의 북한 대표는 “미국이 북한 침공을 승인할 것이냐?” “북한이 핵 프로그램을 폐기한다면 미국은 답례로 무슨 조치를 취하겠느냐?” 하는 질문을 미국 대표에게 던졌다. 그러나 미국 대표는 묵묵부답이었다. 워싱턴으로부터 지시가 없었기 때문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핵을 둘러싼 위기는 고조되게 마련이다. 그런데도 부시 행정부는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있다. 한국인들은 대화를 촉구하고 있다. 이번 총선 결과는 이러한 민심의 표출이다. 최근 북한은 진정으로 대화와 타협을 원하고 있다. 북한 주민들의 곤궁한 처지를 인식한 김정일은 무언가 상응한 대가가 있다면 기꺼이 핵 프로그램을 폐기할 용의가 있어 보인다.
얼마 전 베이징을 방문한 김정일은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과의 회담에서 6자 회담에 유연하고 대처하고 인내심을 발휘하겠다고 밝혔다. 노 대통령은 이번 총선 결과에 힘입어 대북 대화를 더욱 활기차게 진행할 것이다. 그런데 부시 행정부의 강경 자세는 현안 해결을 위한 구체적 행동을 막고 있다.

프랭크 기브니/LA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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