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비현실적인 부시

2004-04-17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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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시의 이라크 민주화 안이 옳다고 치자. 부시는 “자유로운 이라크는 중동 전역에 걸쳐 개혁주의자들에게 선례가 될 것”이라며 “자유로운 이라크는 미국이 평화롭게 살고 싶어하는 회교도들의 친구임을 보여줄 것”이라고 말했다.
부시가 이라크를 공격한 주요 이유는 모범 회교 국가를 만들기 위한 것이 아니라 사담 후세인의 대량 살상 무기를 찾기 위한 것이었다. 중동 민주화를 전쟁 이유로 내걸었더라면 대부분의 미 국민은 반대했을 것이다. 전쟁 전 뭐라 말했건 민주주의를 확산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성공은 해야 한다.
불행하게도 럼스펠드 국방장관은 특유의 이론을 갖고 있다. 미군은 워낙 강하기 때문에 적은 병력으로도 전쟁을 이길 수 있다는 것이다. 이번 이라크 전쟁에 동원된 병력은 1991년 걸프전 때의 1/3에 불과했다. 13만 명의 미군과 3만 명의 영국군이 전부였다. 이는 1999년 국방부 전쟁 시나리오가 추산한 숫자가 아니었다. 당시 이라크는 공격해 안정시키는 데는 40만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됐다.
럼스펠드 예측대로 후세인군을 격파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라크 진주 후 약탈과 혼란이 있었다. 그러나 럼스펠드는 “ TV가 똑같은 약탈 장면을 되풀이 해 보여주고 있을 뿐”이라며 사태의 심각성을 부인했다. 이라크 내 미군 병력은 유전과 대량 살상 무기 시설을 확보하기에 충분한 수준이었을 뿐 몬태나 크기의 나라를 점령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부시는 이라크에 민주주의를 심겠다는 야심적인 계획을 부족한 병력으로 이루려 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아버지 부시와는 달리 전통적 우방이나 아랍 각국의 도움도 필요 없다는 생각이다.
터키가 북쪽에서 이라크를 침공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우리 요청을 거부했는데도 예정대로 이라크 전쟁을 감행했다. 그러다 이제 와서 이라크가 베트남화 되어 가고 있다고 우려하는 것은 적을 돕는 행위라고 주장하고 있다. 베트남 타령은 적과 우리 병사들에게 “잘못된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란다.
그러나 잘못된 메시지는 불충분한 병력을 가지고 일을 제대로 하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미리 이라크 민주화에 길고도 비싼 희생이 따를 것이란 점을 미국민에게 주지시키지 않은 것도 잘못이다. 비판자들을 매도함으로써 나라를 분열시키는 것 또한 잘못이다.
나는 후세인 축출이 잘 된 일이며 이라크 민주화는 환영할만하고 이것이 실패할 경우 재난이 온다는 데는 대통령과 생각이 같다. 그러나 우리가 실패한다면 이는 비판자들 때문이 아니라 부시가 현실을 무시한 잘못된 이론을 맹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E. J. 디온/ 워싱턴 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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