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한국인의 ‘정’

2004-04-15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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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날 예배를 준비하고 있는데 어떤 한국분이 나를 만나고 싶어한다고 한인 성도가 알려 주었다. “왜 들어 오라고 하지 않았습니까?”라고 묻자 그 성도는 “꼭 밖에서 만나고 싶다합니다”라면서 나를 손님이 있는 곳으로 안내하였다.
추운 건물 밖에서 60세쯤 되어 보이는 자그마한 한인 남자가 서 있었다. 나를 보자 자기의 사정을 한국말로 설명하였다. 나의 짧은 한국말 실력을 양해하여 달라고 말할 겨를도 없었다. 미국사람에게 한국사람의 ‘정’이라는 사고방식을 설명하려는데 도저히 설명할 수 없다는 것 같았다.
그는 나의 칼럼 독자라고 자기를 소개하며 나를 만나기 위해 일부러 일요일날을 택하여 교회로 왔다고 했다. 한국인의 사고방식을 내가 이해할 것 같은 생각에 나를 찾아왔다면서 법적인 문제 때문이라면서 한국 문화를 설명할 수 있는 미국사람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하였다. 그의 변호사가 나에게 전화를 걸어도 괜찮겠느냐고 물었다. 물론 괜찮다면서 전화번호를 그에게 주었다.
그의 이야기는 대강 이렇다: 그는 미국에 이민 온 지 얼마 되지 않는다. 한국에서 알고 지냈던 사람을 만나 사업을 같이 하면서 그 친구와 ‘정’이 깊어졌다. 가지고 있던 돈을 친구에게 전부 빌려주었다. 친구의 사업이 망하자 카드 빚을 내어 친구를 도왔다. 남의 돈을 빌려서 주었다. 직장에서 돈을 빼내어 파산한 친구에게 주었다. 어느 날 그 친구는 말도 없이 이사를 가버렸고 지금 그는 감옥에 갈 처지에 놓였다는 사연이다.
왜 친구에게 돈을 주었느냐고 묻는 미국인 변호사에게 “친한 친구라서 나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라고 말하였다 한다. ‘정’ 때문이었다고 말한다. 미국인 변호사가 자기말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면서 ‘정’이란 한국인의 정서를 설명하여 달라고 하였다.
한국사람들이 말하는 ‘정’이라는 개념이 왜 미국사람들에게 생소하기만 할까? 영어로는 비슷한 단어조차 없는 그래서 설명하기조차 어려운 생소한 사고방식이다.
한인 친구들에게 나는 ‘정’을 설명하여 달라고 부탁하였다. ‘동정심’이라고 설명하여 준다. ‘좋은 감정’이라고 한다. ‘타인에게 향한 깊은 마음’이라고 한다. 친구 사이, 형제 사이, 남편과 아내 사이, 이웃 사이의 관계에서 생기는 서로를 배려하는 마음이라고 설명한다. 한 친구는 남편과 아내가 싸우면서 서로 ‘정’이 든다 라고 하며 ‘정’의 복잡성을 설명하였다.
이처럼 복잡한 의미가 함축된 ‘정’이라는 단어를 생각하였다. 영어로 ‘정’이란 단어를 ‘마음과 마음이 연결되는 것’(heart connection)으로 표현해 본다.
참으로 아름다운 정서이지만 ‘정’ 때문에 생기는 문제도 생각하여 본다. 만약에 친한 친구가 당신에게 부탁을 한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부탁을 들어주고 싶은 마음일 것이다. 친구가 법에 어긋나는 일을 부탁한다면 당신은 어떻게 하겠는가? 마음을 움직이는 ‘정’ 때문에 이성적인 판단을 문밖으로 쫓아내어 실수를 범케 하는 것은 아닐까.
한 친구는 ‘정’을 한자로 써서 보여 주면서 ‘마음’이라는 글자를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마음과 마음의 관계를 정이라고 한다. 머리는 지적으로 판단하고 분석하는 이지의 자리이다.
정 때문에 범죄한 한국사람을 심판할 미국인 판사는 머리로 그를 심판할 것이다. ‘정’을 경험하지 못한 판사는 ‘정’이라는 한국인의 정서를 머리로 이해할 것이다.
한국사람은 ‘정’에 약하다는 말을 들었다. 그래서 친구나 친척이 부탁을 하면 불법행위를 하면서 까지 부탁을 들어주는 ‘정’ 때문에 감옥까지 가는 문제가 생기는 것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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