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4.15 한국 총선

2004-04-15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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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북-대미 관계 재정립 계기

한국 총선은 한국인과 미주 한인만의 관심사가 아니다. 미국 등 외국 언론에서도 한국 정국에 주목하고 있다. 워싱턴포스트 등 주요 언론의 보도 내용을 간추려 본다.

이번 선거는 한국 내 정당 구도뿐 아니라 이라크와 북한 문제를 둘러싸고 미국 정부와의 관계를 재정립하는 계기가 될 전망이다.
또한 탄핵으로 직무정지 상태에 있는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국민 심판의 성격을 갖고 있기 때문에 향후 정국의 향배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헌법재판소가 진행하고 있는 탄핵재판에도 일정부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노 대통령은 북한과의 관계 개선을 강조한 반면 미국에 보다 자주적인 입장을 견지하려는 지도자이므로 향후 한국정부의 외교정책의 수립과 추진을 가늠할 수 있는 계기를 이번 선거가 제공하고 있다. 우리당은 북한보다 미국에 미적지근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일례로 우리당은 북한에 비교적 우호적인 정책을 선호하는 반면 한나라당은 그 반대편에 서 있다. 한나라당이 선거막판 젊은 유권자들의 지지를 받아내기 위해 대북한 유화 제스처를 쓰긴 했지만 말이다. 1974년 북한 공작원에 의해 어머니가 피살된 한나라당의 박근혜는 북한과의 관계개선의 일환으로 북한을 방문할 용의가 있음을 선언했다.
우리당은 진보적인 노선으로 유권자들을 파고들었고 한나라당은 한국 정치의 고질적인 현상인 지역주의에 편승했다고 할 수 있다. 이라크 파병문제와 관련 민주당은 파병을 처음부터 다시 검토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차기 국회에서 이 문제가 재점화할 공산이 있다.




경제에 미칠 영향 작다

노무현 대통령 경미한 선거법 위반으로 지난 3월12일 국회에서 탄핵됐다. 그의 지지율이 매우 낮았었는데 국회의 탄핵안 가결을 기화로 한국민의 동정 심리가 발동했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너무했다는 게 지배적인 여론이었다.
정당들은 정책을 제시하기보다 감성적인 캠페인을 전개했다. 아시아 4대 강국인 한국으로서는 얼굴을 들기 멋쩍은 정치 풍광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제 안정적인 정국 운영과 견제와 균형의 국정 운영을 놓고 한차례 격랑이 휘몰아칠 것이다.
외국 투자자들은 정국 추이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대북한 문제를 다루는 데 있어서 미국과의 연합전선을 펴고 있는 한국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 지 모르는 연유다. 지난 2년간 북한 핵 문제로 긴장이 고조된 것을 감안하면 당연한 관심이다.
게다가 북한의 인민일보가 사설에서 남한 유권자들이 직면하고 있는 주요한 임무는 반민중적이고 타락한 한나라당을 응징하는 것”이라고 주장했고 우리당이 대통령 탄핵 가결을 한나라당의 쿠데타로 몰아세우며 대립각을 세웠으니 그럴 법도 하다.
한국의 경제인들은 그러나 이번 선거보다는 국제경제, 기업이익, 11월 미국 대선에 더 초점을 맞추고 있는 분위기다. 한국 경제는 선거 결과에 별로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다.
강력한 대통령 중심제를 채택하고 있는 한국이 국회 선거결과에 따라 좌지우지되지 않을 것이란 판단에서다.


<로이터>

첨예한 세대갈등 표출

정치학을 전공하는 대학생 인미리(21)씨는 지난달 국회가 노무현 대통령 탄핵안을 가결하는 것을 TV로 본 뒤 분개했다. 그는 즉각 인터넷을 통해 친구들과 연락을 취해 탄핵가결에 맞설 것을 다짐했다. 그러나 한국전 참전용사인 그의 할아버지(72) 탄핵 찬성 시위에 동참해, 탄핵가결이 ‘남한 공산세력의 붕괴’를 의미한다며 환호했다.
젊은이들은 한나라당을 중심으로 한 보수세력이 노 대통령을 탄핵한 것은 노 대통령이 대북 화해, 대미 자주외교, 부유층에 대한 증세 등 정책을 펴자 이에 반발했다고 주장했다. 세대간 갈등은 한 지붕의 가족 구성원간 마찰을 야기하고 심지어 아들이 아버지와 딸이 어머니와 불화를 보이는 관계까지 비화하고 있다. 인미리씨의 경우는 손녀와 할아버지의 대립양상이다.
인씨는 “TV를 할아버지와 같이 보다보면 할아버지는 젊은이들이 한국을 공산주의자들에게 넘겨주려고 한다고 질책한다”며 “할아버지는 진보세력과 공산주의자를 구분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그의 할아버지는 탄핵지지 모임에서 홍보 인쇄물을 가져와 손녀의 마음을 돌려보려고까지 했다. 인씨는 “한국사회는 노인들을 공경하지만 세대 차이가 너무 심하다. 그들은 한국사회의 변화를 용납하려 들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이들 다른 세대는 자신들의 의견을 표출하고 대리 만족하는 방법도 다르다. 젊은이들은 인터넷과 이메일을 의사소통의 주요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는 반면 노인들은 노 대통령의 정책에 비판적인 보수적 논조의 신문에 의견을 개진한다.
젊은이들은 대단치 않은 과오를 빌미 삼아 국민들이 직접 뽑은 대통령을, 게다가 부패한 국회의원들이 탄핵하자 분개했다. 그리고 보수세력은 우리당과 노 대통령이 주장하는 소위 진보와 개혁이라는 말을 북한의 선전구호와 동일시하고 있다.
서민계층인 한 가정주부는 탄핵 가결 이후 우리당 자원봉사자가 됐다. 그는 한나라당이 노 대통령과 그의 지지자들을 극좌파로 매도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정치 문외한인 그가 정치 자원봉사자가 된 이유는 이념 때문이 아니라 부패한 한국정치 때문이다. 서민들이 우리당을 지지하는 것이 북한의 노선을 지지하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그저 보다 나은 사회를 위해서 노력할 뿐이라는 것이다.

<워싱턴 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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