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이라크, 끝이 안 보인다

2004-04-03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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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시 대통령이 이라크에서 잔혹하게 살해된 미국인들의 참상을 TV로 보았다고 한다. 부시는 그 순간 분노를 느꼈을 것이다. 그러나 과연 구체적으로 어떠한 생각들이 그의 마음에 스쳐지나갔는지 알 수 없다. 자신의 행동이 옳았는지, 최소한의 양심의 가책은 없었는지 하고 생각했을까 궁금해진다.
팔루자에서 일어난 만행의 가해자들을 엄벌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해도 앞으로 이와 유사한 일들이 일어나지 말란 법이 없다. 우리는 사담 후세인에 대한 부시의 집착으로 불필요한 분쟁에 휘말려 있다. 부시 행정부가 일관성 있게 설명하지 못하는 전쟁명분으로 수백의 미군과 수천의 이라크 주민들이 죽었다. 전투기를 타고 항공모함에 자랑하듯 내려 이라크에서의 전쟁은 끝났다고 호언하던, 인기몰이에 불과했던 부시의 행동을 생각해 보라.
부시는 잘못했다. 대량살상무기에서도 그러하다. 이라크 치안확보를 위해 필요한 미군병사의 수에 대해서도 틀렸다. 부시 행정부는 자신들이 처음부터 세웠던 계획을 감추려고 무진 애를 썼다. 잔인한 사건이 일어난 팔루자 인근에는 미 해병대 4,000명이 주둔하고 있다. 그러나 해병대 지휘관은 불에 탄 시체를 절단하는 폭도들의 만행에 적극 개입하지 않은 것으로 보도됐다. 미군 저지 없이 광란은 계속됐다. 같은 날 팔루자에서 서쪽으로 15마일 떨어진 작은 마을의 거리에선 미군 호송차량이 폭탄을 밟아 5명이 숨졌다. ‘새로운 이라크’를 자랑하기 위해 준비됐던 대규모 무역박람회는 치안 불안으로 연기됐다.
우리는 지금 이라크의 수렁에 빠졌다. 미군 600여명이 이미 사망했다. 세계는 이라크 공격이 ‘미국의 쇼’라고 여기고 있다. 국제사회의 지원을 별로 얻지 못하고 있는 연유이다. 사우디아라비아조차도 원유감산을 주도해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고 있다.
부시는 이라크 전비 등으로 문제가 많은 데도 “감세”만을 외고 있다. 우리는 점점 시력을 잃어가고 있다. 부시와 행정부 관리들이 다가올 또 다른 비극에 대해 감을 잡고 있다는 아무런 증거도 없다.
밥 허버트/뉴욕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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