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또 한차례의 도박인가

2004-03-13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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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과 맹렬한 몸싸움이 오간 뒤 국회에서 사상 처음으로 한국의 현직 대통령이 탄핵됐다. 축하에서 비탄에 이르기까지, 대통령 탄핵에 따른 각양의 반응은 그러나 한국이 직면한 진짜 드라마를 노출시켜다. 이 지역에서 가장 중요한 미국의 전략적 맹방인 한국에는 깊고 깊은 이데올로기상의 간극이 존재해 있고 한국민은 심각히 분열돼 있다는 것 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운명과 한국민의 반응은 주한미군문제에서 북한 핵 문제, 한국 경제회복 등 워싱턴으로서는 극히 중요한 일련의 이슈에 상당한 파장을 가져올 것으로 분석가들은 보고 있다. 국회의 탄핵을 한국의 헌법재판소가 받아들여 노 대통령이 사임케 될 경우 현 정부의 이른바 개혁주의 아젠다는 증발하고 한국은 새로 대통령선거에 들어가게 된다.
대부분 분석가들은 노 대통령에 대한 국회의 탄핵은 위법성 여부보다는 정치적 이데올로기와 더 관련이 있다는데 동의하고 있다. 말하자면 가벼운 절도 혐의자에게 총격을 가한 꼴로, 한국의 엘리트들은 처음부터 노 대통령을 인정하지 않았다는 게 분석가들의 지적이다.
이데올로기상의 갭은 대부분 세대적 갭이다. 노 대통령 지지자들은 한국전쟁의 기억이 없고, 인터넷 세대인 젊은 층으로, 이들은 진보성향에 북한과의 통일을 갈망하고 있다. 야당인 한나라당 지지자들은 기득권 층으로 상대적으로 노년층이고 보수적이다. 이들은 노 대통령이 계급전쟁을 유발하고 미국과의 관계를 소원케 하고 있다고 비난한다.
노 대통령은 ‘한국의 로빈 훗‘이 되겠다는 공약과 함께 정권을 잡았다. 그의 보좌관들은 군사정권시절 반정부 운동권출신이 대부분이다. 지난 1월 노 대통령은 지나치게 ‘친 워싱턴’(숭미주의자)이란 이유로 외교부장관을 경질하고 외교관들을 숙청했다. 그러나 많은 한국인들은 미국을 북한의 위협으로부터 보호해줄 맹방으로 보고 있다.
노 대통령은 마지막 표결에 앞서 탄핵을 모면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야당으로부터 제공받았다. 우리당 지지를 공개적으로 발언한데 대해 사과하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를 거절했다. 왜 그랬을까. 많은 사람들은 이를 놓고 노 대통령이 정치적 도박을 하고 있는 것으로 믿고 있다. 탄핵을 당함으로써 기득권 층의 희생자로 비치게 한다는 도박이다.
이렇게 됨으로써 가족과 측근의 비리문제로 떨어지고 있는 지지를 만회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책략은 극히 위험한 것으로 분석가들은 보고 있다. 미약한 회복기미를 보이고 있는 한국 경제가 탄핵사태로 타격을 받게되고, 또 탄핵사태에 따른 정치적 불안은 외국자본을 빠져나가게 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워싱턴 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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