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BB Gun

2004-02-05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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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전자 메일을 처음 소개받은 것은 1988년이었다. 그러나 직접 전자우편을 사용한 것은 AOL에 가입하고서부터였다. 사실대로 정확히 따지자면 14년 전 AOL 전자통신은 그저 작은 게시판에 불과하였다. 그 당시 나는 286 모델 컴퓨터에 붙인 모뎀에 전화선을 연결하여 전자메일을 체크하곤 하였는데 형편없이 느린 속도였다. 지금에 비하면 수백배 느렸지만 문자와 숫자를 교환하는 전자통신으로는 그리 문제가 되지 않았다.
지금 우리들에게 익숙해진 그래픽 인터페이스로 인터넷에 접속하게 된 것은 그 뒤 몇 년이 지난 후였다. 사진을 전자메일로 처음 받았을 때 어찌나 신기하던지 나는 그때 그 기분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전자통신으로 받은 그래픽 파일을 열었을 때 몇 분 정도 걸쳐 사진이 스크린에 펼쳐지는 것을 보는 기분은 정말 굉장하였다.
나의 첫 번째 전자우편 사용자 이름은 ‘x4man’이었다. 그 이름을 선택하게 된 것은 평소에 낱말게임을 즐기는 이유도 있었고, 나의 이름의 약자와 성을 따서 ‘cforeman’으로 이름을 짓는 것이 너무 심심하다는 이유도 있었다. 영어로 ‘X’는 십자가를 상징하기에 그리고 나의 이름 ‘Chris’를 표현하려는 의미에서였다. ‘4man’은 나의 성인 ‘foreman’을 숫자와 섞어서 표현하였다. 나는 ‘x4aman@aol.com’으로 몇년 동안 사용하였다.
얼마 후 내가 일하던 대학에서 전자통신을 무료로 관리하여 주었기에 AOL을 취소하였다. 대학에서 제공하여 준 전자메일 주소는 ‘foremanc’였다. 대학은 사용자의 성명을 밝혀야 한다는 이유로 이름과 성을 합해서 이 메일 주소를 제공하였다.
이와 같은 사용자 이름 제정 규칙이 나의 친구 케니 진(Kenny Chin)을 당황하게 만들었다. 그의 성인 ‘chin’과 이름의 첫 글자인 ‘k’를 사용하여 ‘chink’라는 전자메일 주소를 받았기 때문이다. 나의 중국인 친구는 대학에 항의하여 중국 사람을 비하하는 욕된 이름을 취소하고 새로운 사용자 이름을 받았다.
나는 1995년 처음 월드와이드웹에 띄울 나의 첫 웹페이지를 제작하였던 기억이 난다. 영상 이미지와 소리를 담아 온 세상 사람들과 함께 정보를 나눌 있다는 무한한 가능성에 매료되어 밤을 새워가면서 웹페이지 제작을 하였다.
첫 번째 나의 웹 주소는 날아가는 구름(flyingfog.net)이라는 이름으로 지었다. 개성 있고 재미있고 낭만적인 이름이라 생각하여 그렇게 지었다. 바닷가 가까운 우리 동네는 안개가 많이 낀다. 어떤 하루, 집 앞 산등성이를 넘어 우리 집을 향하여 용이 혀를 날름거리며 기어오는 모습의 안개구름을 보고 ‘날아가는 구름’(flyingfog)이라는 시를 쓴 적이 있다. 그 시의 제목을 따서 사용자 이름을 지었다.
습관적으로 나는 독특한 개성을 보이는 웹 주소나 이 메일을 접할 때 사용자 대한 호기심이 생긴다. 독특한 이름처럼 흥미로운 사람일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이다. 요즈음 나는 ‘그린샐러드’ ‘피자 메이커’ ‘라이스보이’ 같은 이름을 사용하는 개성 있는 젊은이들과 통신교환을 하고 있다. 우리 교회 청년들이다. 이들 중에 ‘bbgun’이라는 이 메일 주소를 사용하는 여학생이 있다. 특이한 이 메일 이름이기도 하지만 ‘bbgun’과 그녀의 이미지가 너무 동떨어져 메일을 보낼 때마다 궁금증이 생겼다. 그녀가 총을 좋아할 그런 타입은 아닌 것 같은데… 혹시 어떤 사람이 그녀를 공기총으로 쏜 적이 있는 것일까?
지난주 친교시간에 궁금증을 풀었다. “무슨 이유로 bbgun이라는 이 메일을 갖게 되었습니까?” 하고 그녀에게 물었다.
그녀는 조금 망설이다가 웃으면서 “자라면서 한인 어른들이 내 이름을 그렇게 불렀어요” “아하. 이제야 알겠다, Viv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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