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장막을 걷고 태양 앞에 서자

2004-01-13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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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태양은 다시 떠올랐지만 대지는 아직도 어둡다. 우리는 왜 새해의 여명을 연 저 밝은 태양처럼 희망과 포부를 갖지 못한 채 어두운 장막 뒤에서 서성대고 있는가. 세계는 바야흐로 미래를 향해 구보로 달려나가고 있는데, 우리만이 제자리에서 팽이질을, 아니 뒷걸음질치는 까닭이 무어란 말인가.
국가를 이끌어나가는 정치 지도자들의 자질 미달과 무책임과 사리사욕이 그렇게 된 이유 중 가장 크다는 걸 누가 부인할 것인가. 노무현 정권 출범 1년 여, 지난 한 해는 혼란과 투쟁과 정체의 늪에서 허우적댄 한 해였다. 국가 안보는 반미-친북 정책으로 휘청댔고, 정치권은 대결과 반목으로 허송세월을 했고, 경제는 마이너스 성장에 가깝게 죽을 쑤었고, 사회 전 분야는 자기 이익 지키느라 혈투를 벌였고, 젊은이들은 파산선고를 받고 거리를 배회하고, 가장은 일자리를 잃고 지하철 노숙자로 전락한, 이 기막힌 사태들을 놓고 위기가 아니라고 강변하는 자들은 과연 누구인가. 그들은 자유 민주주의의 근간을 부정하는 친북 좌파이거나, 지구촌의 대변화와 냉엄한 국제질서를 외면한 채 ‘민족주의’라는 낡은 옷을 걸친 그야말로 수구주의자이거나, 나라야 어찌됐건 나와 내 가정의 행복이나 챙기자는 이기주의자이거나, 아니면 현실감이 태부족한 낭만적 바보일 것이다.
지금 우리는 위기의 깊은 수렁에 이미 빠져 있다. 왜 이 지경에 이르렀는가. 그 책임의 한 가운데 노무현 대통령이 있다. 낡고 부패한 기성 정치판을 엎어버리겠다며 정상에 올라앉는데는 성공 했지만 국민의 한결같은 기대를 저버린 채 문제의 중심에 서 온 것은 개인의 불행인 동시에 국가의 불운이다. 대통령이란 국민을 하나로 묶어 국가의 운명을 개척해 나가고, 국리민복을 증진시키고, 기강을 바로 세워 법과 질서를 유지하는 지고의 자리가 아닌가.
한데 그가 등장한 이후 민생은 바닥으로 갈아 앉고, 부정부패는 기승을 부려 법과 질서가 실종되는 국가 위기가오지 않았는가. 도대체 대통령과 그 측근들의 부정이 법적 심판을 받아야 하는 기막힌 사태야말로 국가 혼란의 일차적 원인이 아니고 무엇이랴. 자신의 비리는 ‘닭서리’로, 남의 비리는 ‘소도둑’이라고 표현한 그 저변엔 ‘작은 도둑은 도둑이 아니다’라는 것은 아닌가. 하지만 도덕군자를 자처하던 이가 나쁜 짓을 했다면 더 지탄받는다는 사실을 모르는 모양이다. 대한민국 국민의 얼마가 그를 책임감 있고 능력 인정받고 청렴결백한 국가지도자로 존경할까 헤아려 보자.
그렇다고 국가위기를 이대로 두고 볼 것인가. 결코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대통령이, 정치하는 자들이, 권력께나 쓴다는 자들이, 돈푼께나 감춰두고 거드름 피는 졸부들이, 법과 사회 질서와 상식을 뒤엎는 일에 영일 없다고 해서, 민초들도 손놓고 포기할 수는 없지 않은가. 저들의 손에 나라 운명을 온전히 맡겼다가는 민초들 자신이 가난과 찌들어 살아야 한다는 경각의 사이렌이 우리 귀를 때리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하나 하나의 힘은 약해도 백이 모이고 천이 뭉치고 백만이 함성을 친다면, 그 힘을 당할 자 누구이겠는가. 이제 민초들이 깨어나야 한다. 대통령 탓하고 정치인 욕하고 재벌 손가락질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여기서 공산당식 민중봉기를 하자는 것은 아니다. 국민의 행동은 어디까지나 자유 민주주의와 대한민국의 법 테두리 안에서 이뤄져야 한다. 저들이 불법과 탈법을 할 때 백성들은 준법과 양식 있는 행동을 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국민의식 개혁’이다. 이는 노 대통령이 자기 정치 노선을 지지하는 ‘노사모’를 향해 소리 친 ‘시민혁명’과는 전혀 다른, 순수하고 비정치적인 행동이다. 나의 주창은 국가 위기를 극복하고 나라의 백년대계를 세우는 국가적 민족적 양심 운동을 말한다.
이는 결코 논리나 구호만으로 달성되는 것은 아니다. 합법적인 프로그램과 절차를 갖고 추진할 문제다. 나라를 이 지경으로 몰아온 대통령과 정치인과 기타 사회 지도층임을 자처하는 자들에 대한 무서운 경고를 힘으로써 보여주는 일이다. 그 방법은 바로 석 달 뒤 치를 총선거에서 ‘국민의 힘’을 표로써 보여주는 쾌거다. 노 대통령의 지도력과 국정 운영 능력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된다면 그가 지지하는에 표를 찍지 않으면 된다. 돈을 ‘차 떼기’로 몰아간 한나라당에 철퇴를 가하고 싶다면 그 당 소속 후보를 낙선시키면 된다.
노 대통령이 ‘노무현 당’으로 일컬어진 ‘열린 우리당’의 승리에 온갖 것을 걸고 무리수를 쓰면 나라는 더 혼란에 빠지고 자신의 입장도 궁핍해질 것이다. 따라서 그가 할 일은 총선에서 손을 떼고 결과를 겸허하게 수용하는 일뿐이다. 만약 야당이 절대 다수 의석을 차지한다면 그것은 노 대통령에 대한 국민의 강력한 불신임을 의미한다. 그는 스스로 거취를 결심해야 한다. 한국민들이여! 이제 잠에서 깨라. 노무현씨가, 야당이, 이 나라의 주인은 아니라는 사실, 이대로 가다가는 나라가 결딴난다는 위기의식을 가지라. 주인이 잠에서 깨어나야 집(국가)을 제대로 지킬 수 있지 않겠는가.

안영모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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