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베트남과 이라크, 차이와 공통점

2003-12-30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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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카이저/ 워싱턴포스트

이라크는 제2의 베트남인가. 우리는 또 다시 수렁에 빠져 수천명의 젊은 미국인을 죽음에 몰아넣을 것인가. 최근 들어 자주 들리는 질문이다. 역사는 되풀이되지는 않으며 기껏해야 비슷하게 돌아간다(History doesn’t repeat itself, at best it rhymes)고 마크 트웨인은 말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라크와 베트남은 다른 점도 많지만 비슷한 점이 없는 것도 아니다.

미군은 미국인이 뉴욕과 세인트루이스, LA에서 테러를 당하지 않게 하기 위해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 가 있다. -조지 W. 부시, 2003년 8월26일
베트남에서 공산군을 막지 못할 경우 그들은 하와이와 샌프란시스코에 오게 될 것이다.
-린든 존슨, 1966년

월남전에 관한 논쟁이 1964년부터 1972년까지 대선을 지배했듯이 이라크 전에 관한 논란이 2004년 대선에서 주요 쟁점으로 부각될 것이다. 월남전이 그랬듯 이라크 전은 미국 내 여론을 두 조각으로 갈라놓았다. 군사적으로는 이라크와 베트남은 비교가 안 된다. 월남 공산군은 프랑스와 맞서 싸워 이긴 전력이 있으며 많은 월남인들이 이들을 정당한 월남 군대로 봤다. 월남 공산군은 미국을 또 하나의 식민국가로 여겼다.
소련과 중국은 이들에게 군수 물자를 지원했으며 라오스와 캄보디아라는 숨을 곳이 있었다. 이를 막기 위해 미국은 55만명을 월남에 파병했으며(현재 이라크 주둔 미군은 13만명) 대대적인 공습을 감행했다. 그럼에도 월남 공산군은 이에 겁먹지 않았다.
지금 미군을 죽이고 있는 이라크 게릴라는 현재로서는 무기는 충분한 것처럼 보이지만 이들에게 물자를 대줄 세력은 없다. 군대 조직도 없고 미군과 전투를 벌일 능력도 없다. 이라크 전이 시작된 지 10개월 동안 미군은 471명이 사망했다. 월남전 때는 같은 기간 2,000명이 죽었으며 종전까지 5만8,000명이라는 엄청난 희생을 치렀다. 이라크 전에서 이같은 사망자가 발생할 것으로 내다보는 사람은 없다.
미국이 월남전에 개입하게 된 것은 동남 아시아의 공산화 도미노를 막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미국의 입장을 지지하는 정치 지도자를 내세워야 했는데 부패하거나 무능한 인물밖에는 없었다. 그것이 월남인들의 신뢰를 잃는 요인의 하나가 됐다.
이라크 전 원래 목적은 대량 살상무기를 찾아내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것이 나오지 않자 이라크 민주화로 바뀌었다. 체니 부통령은 미국인이 진주하기만 하면 이라크 인들은 이를 해방자로 환영할 것으로 낙관했다. 부시 행정부는 전후 처리를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보지 않았다.
아버지 부시 대통령과 브렌트 스코크로프트 안보담당 보좌관은 1998년 쓴 책에서 어째서 바그다드로 진격하지 않았나를 설명하면서 사담을 제거할 경우 미국은 막대한 인명과 정치적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며 적대적 영토에서 점령군 취급을 받게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 미국은 수니와 시아파, 쿠르드족으로 나뉘어진 땅에서 점령군 노릇을 하고 있다. 지금 임시 정부를 세우려고 노력하나 모든 이라크인들이 받아들일 만한 정부를 세우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월남전 때도 그랬다.
정치적 목적이 순조롭게 이뤄지지 않을 경우 이라크는 베트남을 보다 더 닮게 될 것이다. 존슨이 월남 사태를 낙관적으로만 묘사했던 것과 같이 부시 행정부 관리들은 이라크 사태를 낙관하고 있다. 지난 5월 국방부는 연말까지 3만명의 미군이 이라크에 남게 될 것으로 예측했으나 현재 13만명이 머물러 있다.
월남에서 그랬던 것처럼 미군은 이라크에서 이라크인들과 격리된 채 고립돼 있다. 이들 중 아랍어를 할 줄 아는 자는 극소수고 이라크 역사에 관해서도 무지하다. 월남전 때 대다수 우방이 미군 참전에 반대했던 것보다 더 많은 우방이 이에 반대했지만 미국은 이를 무릅쓰고 이라크 전을 벌였다.
존슨이 월남전에 드는 경비 마련을 위해 세금 인상을 거부했던 것처럼 부시 행정부도 세금을 올리지 않고 있다. 존슨의 적자 재정 운용으로 미국은 10년 이상 인플레에 시달려야 했다. 베트남은 미국 경제를 망치고 미군을 거의 파멸시켰으며 정부에 대한 신뢰를 추락시켰다. 이라크 전쟁은 이런 결과를 가져오지는 않을 것이며 민주 정부 탄생이 성공할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두 전쟁의 공통점이 주는 경고에도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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