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진실의 순간

2003-12-19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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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담 후세인 생포에 대한 국제사회의 반응 가운데 가장 인상적인 것은 이라크에 대한 부채를 일부 탕감해 주겠다는 프랑스의 결정이었다. 부시와 영국의 블레어 총리는 독재자 후세인을 제거함으로써 자신들의 정치력을 강화시키려 했으며 프랑스의 시라크 대통령은 독재자를 두둔함으로써 같은 목적을 꾀했다. 이런 점에서 세 정치인은 진실보다는 다른 쪽에 관심이 있었던 것이다.

시라크는 이라크 공격과 재건이 실패에 돌아갈 것으로 생각했지만 후세인이 생포되자 지금은 그 반대편에 몸을 기대려는 느낌이다. 부채 일부 탕감 제안은 이러한 구상을 배경으로 한 것이다. 물론 우리는 현 상황에 만족해서는 안 된다. 후세인 생포가 의미하는 긍정적인 측면이 있지만, 이라크 사태와 관련해 보다 더 낳은 결과를 생산하는데 후세인 생포는 필요조건일 뿐 충분조건은 아니다.

후세인이 제거된 상황에서 우리는 이라크에서 진실의 순간을 맞게 됐다. 이 진실의 순간은 이라크인들에게 모든 기회를 부여하는 것으로 나타나야 한다. 후세인을 죽여야 한다는 소리를 이라크인들에게서 들으려 할 때가 아니다. 이라크는 새로운 삶을 기획해야 한다. ‘대부’ 후세인은 제거됐지만 또 다른 ‘조무래기 대부들’이 준동할 지에 대해서도 유념해야 한다.


이라크인들이 되찾은 자유를 만끽하려면 이 자유를 어떻게 써야 하는지 제대로 이해해야 한다. 헌데 이는 쉬운 일이 아니다. 후세인의 유산 때문만이 아니다. 수니파. 시아파, 쿠르드족들이 저마다 자신들의 입지를 최대로 넓히려고 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라크에서 싹트는 것은 책임과 의무를 수반하는 자유가 아니라 무정부 상태라고 표현하는 게 옳다. 이라크인들이 진정한 의미의 자유를 흡수하는 것이 바로 후세인 생포의 의미를 극대화할 수 있느냐는 징표가 될 것이다.

토머스 프리드먼/뉴욕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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